[청년기고] 혐오 문화의 반증인가, 끼워 맞추기식 해석인가

입력 : 2016-05-29 10:55/수정 : 2016-05-29 10:57
며칠 전 강남역 인근서 한 여대생이 30대 중반의 남자에게 묻지마 칼부림으로 살인을 당했다. 대중들은 인터넷과 티비뉴스를 통해 범인의 범행 과정을 삽시간으로 확인했다. 범인의 잔혹 행위는 분노를 일으켰고 시민들은 영문 없이 벌어진 사건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으며, 언론은 범인의 살인 동기를 낱낱이 파헤쳤다. 타인의 무시를 당한 범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품었고, 무고한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청년기고] 혐오 문화의 반증인가, 끼워 맞추기식 해석인가
김민재(24)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 4년


그런데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 기존의 살인사건과는 다른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조명한다. 수차례의 '정신과' 상담 이력,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몇 년간의 '정신질환'을 언급한 원론적인 부분 말고, 범인의 환경이 범인으로 하여금 여성이라는 특정 '집단'을 혐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성 혐오가 살인까지 불러일으켰다고 낙인찍는다. 마치 이번 사건이 일베(일간베스트,여성을 혐오하는 맥락의 커뮤니티사이트)·메갈(메르스갤러리 유저의 준말,남성을 혐오하는 맥락의 커뮤니티사이트)에서 파생된 하나의 사건인 듯 말이다. 단언컨대 이번 사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10년, 20년 전의 뉴스에서도 우리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는 사회부적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개인 혹은 공동체를 돌아보기보다 유독 '혐오 문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사건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살인 동기를 파악하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또 다른 싸움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수만 명이 다녀간 강남역 추모집회 자리에서 여혐/남혐 무리가 나타나 시비가 붙은 일을 종종 목격한다. 이쯤 되면 범행이 여혐에서 비롯된 일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그것이 원인이건 아니건 이미 혐오 문화를 따르는 자들이 오프라인에서 맞붙기 때문이다. 묻지마 살인이 기폭제가 되어 인터넷에서만 들끓던 성별 혐오론자들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남녀 대립 문제. 드디어 우리는 인터넷 문화 또는 일부에서만 관심을 보이는 싸움이라 여기며 애써 외면하던 문제를 직접 맞닥뜨린 것이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1차전이 사회에 앙금을 품던 한 사람이 불특정 사람에게 저지른 살인이었다면 2차전은 살인을 매개체로 불거진 남성과 여성의 대립, 우리 사회에 어느 순간 잠식한 성별 간 싸움으로의 태세 전환이다.

화살은 개인 범죄를 겨냥했지만 방향은 혐오 문화로 틀어졌다. 자다가 남의 다리 긁은 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혹자는 이제야 곪을 대로 곪아 있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도 말한다. 새 판을 짜야 한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가 발생했으며, 우리가 어떤 식으로 혐오 문화를 이해하고 풀어나가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다소 복잡하겠지만 지리한 대화 끝에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려두고 끝없이 논의해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안타깝게 죽은 한 여대생을 추모하는 데에서 그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그전에 필자 또한 한 아무 뜻 없는 날 강남역을 지나갈 수 있었던 시민으로서, 예의를 갖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청년기고’ 코너는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코너입니다.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셋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모든 기고는 수정 없이 게재하며 국민일보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년기고 참여를 원하시는 분께선 200자 원고지 6매 이상의 기고문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에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청년기고 모아보기
▶청년기고 페이스북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관련기사 보기]
▶[청년기고] “워킹대디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청년기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권리 그리고 의무
▶[청년기고] 결혼은 미친 짓일까?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더 보기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