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일까? [청년기고]

입력 : 2016-05-05 11:17/수정 : 2016-05-05 13:09
“인간이라는 맹수를 잘 길들여서 온순하고 개화된 동물, 즉 가축으로 만드는데에 모든 문화의 의의가 있다는 것이 오늘날 어쨌든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니체, 도덕의 계보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혼이란 인간이라는 난교하는 맹수를 일처일부제의 가축으로 길들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결혼을 성을 억압하는 사회문화적 도구의 측면으로만 보면 그럴싸한 논리인것 같기도 하다. 특히 이는 결혼 회의주의자들이 자주 피력하는 논거이다.

결혼은 미친 짓일까? [청년기고]
네이버 블로거 ‘느리게 걷는 여자’ 김주희


그렇다면 어찌됐든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는데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꿈꾸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시 말해 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권리, 섹스할 권리’를 '단 한 사람'에게만 한정짓는 결혼이라는 감옥안에 들어갈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가하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위탁, 재산 증식이나 신분 상승 등의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을 이용하려는 이들과는 달리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발현된 결혼은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도구적 목적에 의해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이용한 사람에 불과 하다면, 후자에게 결혼이란 이질적인 두 사람이 서로 삶의 일부를 공유하기 위한 약속이다. 삶의 일부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자일 때나’ 서로 사랑해야하며, 히스토리이기도한 배우자의 가족을 나의 가족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결혼생활에 포함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도구적 목적에 의해 결혼을 이용한 경우라면, 도구성의 본질은 쓰임새와 소멸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결국 그 결혼은 나와 배우자의 영혼을 왜곡시키는 결과로 이끌게 되며, 그야말로 결혼이라는 울타리안에 갖힌 외롭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서로에게 고슴도치같은 존재가 된다. 운좋게 재력이나 기타의 이유 때문에 결혼을 했지만 살아보니 사랑이 싹트는 경우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랑이 배제된 결혼의 해피엔딩은 현실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사랑해서, 혹은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하고 싶어서 결혼을 했는데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 도중 사랑이 식어버린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랑이란 거미줄처럼 약하단다.
오직 성실함 위에서만 밧줄처럼 강해진다.”

이에 대해 나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의 인용문을 빌리고 싶다. 사랑에 빠지는건 찰나이지만 사랑을 유지시키는 것은 ‘성실함’, 즉 사랑을 유지하려는 의지에의 발현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랑 없이 정’ 때문에 함께 살고 있다는 부부에게 묻고 싶다. 메마른 관계가 되기까지 과연 서로에게 성실했느냐고. 계속해서 사랑을 유지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느냐고.

이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부라면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이와같은 오류를 범했으리라 생각한다. 완성된 그림에 더이상 덧 칠하지 않 듯, 완성된 사랑엔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애는 상대방에게 콩깍지가 씌워지게 만든다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신경전달계 물질이 지배하는 사랑이라면, 결혼은 정서적 유대와 신뢰가 바탕이된 안정감을 주는 옥시토신이 지배하는 사랑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을 오직 ‘콩깍지’의 유무로 국한 시킨다면 그 사랑은 한시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가슴설레고 불타는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믿는 협소한 사랑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랑은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고 그 사랑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부단한 노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잘못된 결혼관‘은 ‘잘못된 결혼생활’을 낳는다.

결혼은 ‘나’와 ‘너’가 만나 ‘우리’를 창조하며 기꺼이 삶의 일부를 공유해가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다.
이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초월하는 무언가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다.

나는 결혼 긍정론자이다. 사랑을 유지하고자 하는 상호 성실성이 바탕이되는 결혼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결혼은 미친짓’이라고 단정짓는 구호에 대해서 일말의 부당함을 느낀다. 이는 성실함이 결여된 사랑의 주인공들이 외치는 피해망상일 뿐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백발의 노부부처럼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된 76년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리얼러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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