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와이너리에서 본 청년의 열정과 도전정신 [청년기고]

입력 : 2016-04-08 16:13/수정 : 2016-04-08 17:04

길가의 한 허름한 창고. 30도가 넘는 푹푹 찌는 무더위에 땀방울이 속옷이 젖은 지는 오래고, 외양간에서 퍼져 들어오는 가축들의 오물 냄새는 코를 찔렀다. 내가 맡고 있는 이 와인의 부케가 나식(Nashik·인도 와인 최대 생산지) 들판의 유채꽃향인지, 창고 밖 외양간 소의 해우(解憂)의 향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코히누르(Koh-i-Noor)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는 와인 메이커의 눈을 보고 있자니 내가 맡고 있는 이것은 무릇 천상의 향기였다.

13세기 인도 골콘다 지방 꼴라를 광산에서 채취된 다이아몬드로, 채취 당시 원석 크기가 793캐럿으로 거대하였으며 남아시아 지역 여러 왕조를 거치며 전해져 내려오다 1849년 영국의 시크 전쟁 승리로 영국군에 전리품으로 빼앗기며 영국 왕실의 소유로 넘어감. 현재, 영국 런던탑에 전시되어 있으며, 인도를 비롯한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음.

인도의 따가운 햇살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와인 메이커는 부티크 와이너리인 Nipha Winery의 창립자이자 주인인 아쇽 수르와데(Ashok Surwade)로, 와이너리 설립 이후 올해 처음으로 와인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좋게 말해 부티크이지 우리네 80년대 시골집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다. 그러나, 인도 와인제조협회(AIWPA) 임원인 우리의 가이드가 나식에 위치한 50개가 넘는 수많은 와이너리 중 이곳을 택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인도의 와이너리에서 본 청년의 열정과 도전정신 [청년기고]
기고자: 박소연 주인한국대사관 선임연구원(33)

야속은 본인의 와이너리를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들로부터 어떠한 평가가 나올지 초조함을 한껏 머금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허름한 창고를 둘러보며, 이 30대 초반의 청년이 나식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해졌다. 미생물학자로 2년간 남극 과학기지에서 연구자로 지낸 아쇽은 고향인 나식으로 돌아온 이후, 인도 와인 산업의 미래를 보고 본인의 전문분야인 미생물학을 접목시켜 와인을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와인 시장으로,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시장이다. 인도의 와인 산업은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해 10년이 조금 넘은 매우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술라(Sula),그로버(Grover)등은 호평과 극찬을 받으며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고, 최근 해외투자(특히 프랑스 와인 기업들)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의 샴페인 제조회사 모엣 샹동(Moet & Chandon)은 인도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 2년 전부터 인도산 “샹동(Chandon)”을 판매하고 있다.


남극 과학기지 연구자였다는 그의 말은 우리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직접 찍은 남극 모습을 담아 발간한 달력, 다른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집필한 남극 저서 등을 보여주며, 땅 인줄 알고 연구기지를 세웠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빙하에 세워 연구지기가 가라앉고 말았다는 등의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와이너리 이름 역시 남극 최고봉인 Nipha(760m)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인생 스토리에 관심을 보이자 더욱 흥이 난 아쇽은 현재 연구 중인 와인을 테스트 해 볼 것을 권했다. 창고 구석에 마련된 조그마한 실험실 냉장고에서 꺼낸 초록색 유리병에는 “무스카트(Muscat)," "까베르네소비뇽(Cabernet Sauvignon)," "슈냉블랑(Chenin Blanc)" 등 포도품종 라벨이 붙여져 있었다. 비커에 부어준 각각의 와인의 부케와 맛을 보고 있자니 실제 와인메이커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무스카트의 짙은 바닐라 향은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축하하자며 애인이 꽃다발과 함께 사들고 온 케잌 상자를 열었을 때 확 풍겨져오는 사랑스러움과 같았다. 아직 맛은 부케만큼 성숙하지 않았지만 인도 와인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는 와인이 탄생할 것 같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의 끄덕임을 보였다.


이렇게 인도의 젊은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곳곳에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IT 강국으로의 부상, 초저가 화성탐사선인 ‘망갈리안’의 화성 궤도 진입 성공, 인도 스타트업 기업들에 대한 세계적 관심 집중. 이 이면에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노력한 인도의 젊은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가족정치, 관료주의, 부정부패에 찌든 정치 개혁을 위해 2014년 개혁주의적인 모디 총리의 당선을 도모했다.

아쇽의 와인이 “허브향과 레드 과일의 풍미, 실키하며 부드러운 동시에 우아하며 견고한 구조감, 균형잡힌 산도와 신선한 탄닌”을 담기까지는 아직 먼 길을 가야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와인산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신념, 그리고 그의 인생 스토리는 그 어느 와인이라도 보르도 5대 샤토 와인 수준으로 격상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헬조선의 ‘N포 세대’로 스스로를 규정짓는 우리 현실을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야속의 와인은 그렇게 공작새(인도의 국조)의 꼬리처럼 긴 포물선을 그리며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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