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하늘나라 계신 코치님, 지켜봐주세요” 봅슬레이 국가대표 원윤종 선수

입력 : 2016-03-23 10:39/수정 : 2016-03-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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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고] “하늘나라 계신 코치님, 지켜봐주세요” 봅슬레이 국가대표 원윤종 선수의 눈물

기고자: 원윤종(32) 봅슬레이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될 것으로 생각 못 한 나 움직인 건… ‘위로’

2010년 여름,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시점에 학교 공고문에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을 한다는 공고문이 있었다. 당시 지도교수님이었던 안정훈 교수님이 추천했지만 사실 운동선수로서의 경험도 없는 상태였고 봅슬레이라는 종목을 잘 알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 농구, 배드민턴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대회에 참가하긴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운동선수가 될 것으로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는 안정훈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다. 이유는 훗날 교사가 됐을 때 많은 경험과 새로운 스포츠를 도전해본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지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장난처럼 도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통과해 실제로 봅슬레이 선수의 활동이 시작됐다. 그 당시 종목 자체도 생소하고 운동선수의 패턴도 전혀 알지 못했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운동선수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도 많이 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때에 나는 운명처럼 이용 감독님을 만나게 되었다. 인생을 많이 살아오진 않았지만 내가 살면서 감독님처럼 훌륭한 성품과 자기 일에 대해서 열정적인 분은 처음 보았다. 모든 것이 어설펐던 나에게 항상 따뜻한 말과 좋은 말씀으로서 위로해주셨다.

현재 대한민국 봅슬레이 스켈레톤팀이 이렇게 세계 정상권에 오를 수 있던 것은 감독님의 노력과 열정을 제일 첫 번째로 이야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스켈레톤팀이 정상까지 오르게 될 때까지는 순탄하게 성장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시련과 고통 그리고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시간을 다시 거슬러 2010년 11월… 처음으로 봅슬레이 트랙을 경험하게 됐다. 장소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파크시티 트랙이었다. 그곳에서 현재 아메리카컵 외국인 지도자인 패트릭 브라운 코치가 봅슬레이를 경험시켜 주었다.

“시합 때마다 낡고 오래된 썰매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짜릿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과 짜릿함도 잠시… 며칠 후부터 본격적인 주행훈련부터 짜릿함과 즐거움은 공포로 바뀌었다… 주행연습을 10번하게 되면 8~9번 정도의 전복사고가 일어날 만큼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또 감독님 및 코치님들은 힘들었다. 선수들은 매일 상처 입고 다치게 되고 지도자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 지와 빌린 장비의 수리를 하면서 몇날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출전 한 첫 국제대회에서 나는 전복사고를 당했다.

실제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지 못하여 공식적인 기록이 없이 시합을 마무리했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하고 좌절하고 실패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즐겨왔던 다른 종목에서 정말 운동을 잘한다고 이야기를 들어왔던 나인데 이러한 결과를 접하게 되니 스스로 많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때 감독님께서는 문제점을 잘 찾고 다시 훈련을 잘해보자며 나를 다독여주셨는 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실제로 그 이후의 연습부터는 많이 발전한 주행능력을 보여주며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 시즌에 북미코스에서 훈련하게 되었다. 미국 파크시티와 레이크 플레시드, 캐나다 캘거리에서 훈련하고 시합을 했는데 시합을 하며 정말 힘든 일들이 많았다. 일단 시합을 뛰기 전에 경기장에 갈 때마다 썰매를 빌려야 하는데 그 일이 순탄치 않았다.
썰매를 빌려야하는데 빌리는 비용도 상당히 고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낡고 오래된 썰매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썰매를 빌려 매일같이 썰매를 정비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트랙에 집중하고 웨이트와 육상훈련으로 기초체력을 올려야 하는 그런 시간에 우리는 낡은 썰매를 빌려 그 썰매로 실제 훈련을 할 수 있게끔 정비하는 시간이 하루의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적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저조한 성적으로 올림픽을 바라보고 출전할 수 있겠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주위에서 나왔었다…

전복사고, 동료의 화상… 주변에서 쏟아진 비난

그렇게 약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러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있었던 세계 선수권대회였는데 처음 가보는 트랙이었고 또 썰매를 빌려타다보니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시합 때 전복사고로 이어졌는데 당시 같이 시합에 참가했던 석영진 선수가 어깨에 큰 화상을 입게 되었다. 더 이상 시합을 할 수 없다고 판단이 되어 석영진 선수는 피부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또한 다음에 있던 4인승 훈련에서도 전복사고가 일어나서 결국 우리는 4인승 시합을 포기한 채 시합을 마무리 해야했다. 석영진 선수의 큰 부상에 나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내가 이 팀에 있어서 모든 것을 망치고 동료까지 다치게 했던 것에 대해서 크게 스스로 질타하고 또 자책했었다. 그렇지만 그 때에도 감독님께서는 오히려 나를 독려하셨다. 나보다도 오히려 감독님께서 많이 힘드셨을텐데 오히려 나를 독려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위에서 “올림픽을 위해서는 이 선수들로는 힘들다” “선수와 지도자를 빨리 교체해서 올림픽에 대비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정말 많이 힘든 시기였다.

그래도 감독님께서 마지막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썰매를 타고 시합을 나가고 싶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져 처음으로 고가의 2인승 봅슬레이를 구입하여 마지막 아메리카컵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도 다시 한 번 주어진 이 기회에 내 모든 것을 걸고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대한민국 첫 국제대회 금메달… 비록 월드컵 대회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을 확인하고 또 보여줄 수 있던 계기가 된 대회였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다.

실망보다 희망을 얘기한 이용 감독님과 로이드 코치의 가르침

처음으로 대표팀만을 위한 주행코치를 영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독님께서는 수많은 지도자에게 제의가 왔지만 고심 끝에 영입한 지도자가 바로 말콤 로이드 코치이다. 이 때부터 대한민국 봅슬레이는 큰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말콤 로이드 코치는 선수 시절에는 큰 성과가 없었으나 지도자로서 캐나다, 영구, 러시아 등에서 수십년간 활동해오며 전세계 트랙에 대한 정보와 코칭력에 대해서 아주 정평이 나있던 지도자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올곧아서 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이 존경하던 코치 중 한명이었다.

올림픽 시즌에 우리는 말콤 로이드와 함께 하며 노력한 결과 2인승 올림픽 티켓을 최초로 2장을 따냈고 4인승 또한 2장을 따냈다. 짧은 역사의 봅슬레이 팀에서 정말 큰 결과를 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기대를 품고 출전했던 2인승 경기에서 우리는 18위라는 순위를 기록했다. 사실 좋은 결과는 아니었기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용 감독님과 로이드 코치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 우리들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빠르게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그렇게 하여 2014ㅡ2015년 시즌에 우리는 봅슬레이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로이드 코치와 2년째 주행을 가다듬고 장비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월드컵 8위, 5위, 6위를 하며 다크호스로 부상했고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5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3위 이내로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약 4년의 시간동안 열악한 환경과 지원 속에서 피땀 흘려 이뤄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해외의 봅슬레이 관계자 및 지도자와 선수들은 한국팀을 모두가 박수를 보내주며 축하해줬다.

그렇게 또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스타트 능력과 장비를 보완하며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2015ㅡ2016년 시즌을 맞이했다.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출전한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우리는 동메달을 따내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은 기적이다.
설마 운이겠지? 라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이어진 2차 대회에서 또다시 동메달을 따내며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1~3차 월드컵이 끝나고 세계랭킹 3위로 시즌 초반을 마무리 하고 우리는 한국으로 입국하고 로이드 코치는 캐나다 자택으로 향했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정말 즐겁고 흥분된 시간을 보냈다며 또 4차 월드컵부터 잘해보자며 인사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또한 로이드 코치는 해외 봅슬레이 관계자에게 한국팀의 저력과 노력 그리고 그들의 정신력은 정말 대단하다며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로이드 코치의 부고, 미망인의 응원… 아시아 최초 봅슬레이 금메달 

그런 로이드 코치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우리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4차 월드컵을 위해 미국 레이크 플레시드로 갔는데 로이드 코치는 합류하지 못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팀은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슬퍼했다.. 매일 매일이 눈물바다였다. 좋은 시합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만큼 팀의 분위기가 많이 무너져 있었다. 그 때에 가장 힘들어하던 분이 감독님이셨지만 마음을 잡고 선수들에게 우리가 로이드 코치에게 보답하는 길은 좋은 성적이라고 말씀하시며 북돋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영우 선수의 허리부상으로 최악의 시합 분위기가 조성했지만, 감독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동메달을 따내며 로이드 코치를 추모했다.

월드컵 5차 대회 때는 누구보다도 슬프고 괴로워했을 로이드 코치의 미망인께서 우리팀을 위해서 직접 캐나다 휘슬러로 왔었다.
미망인과 우리는 다시 한 번 눈물 흘리며 고인을 그리며 많이 눈물 흘리고 슬퍼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다짐하며 시합에 임했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 최초… 아니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금메달을 따내며 로이드 코치에게 영광을 돌렸다. 월드컵 8차까지의 기간 동안 로이드 코치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언제나 함께 레이스를 펼쳤고 기쁨, 영광 그리고 환희의 순간을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번 시즌에 우리는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고 그 영광을 로이드 코치에게 돌렸다.

로이드 코치가 “금메달을 향해 정진하라”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나갈 것이다. 항상 그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늘에서 편하게 우리를 응원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다. 언제나 그에게 감사하고 우리는 가족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 Thanks gomer

기고자: 원윤종(32)
-봅슬레이 국가대표
-2015~2016 월드컵 1,2차 대회 동메달
-2015~2016 월드컵 5차 대회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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