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 시사풍향계

[시사풍향계-조명래] 국민행복과 먼 지역경제 활성화

[시사풍향계-조명래] 국민행복과 먼 지역경제 활성화 기사의 사진

“그린벨트 해제 지역 용도 상향은 엄청난 개발특혜이면서 용도지역 체계 무력화”

복지와 분배를 내세운 경제민주화로 표를 얻었던 박근혜정부가 투자와 성장을 내건 경제 활성화로 화답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경제 활성화와 혼돈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박근혜정부는 60년대를 연상시키는 투자와 성장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취임 첫해 대통령 주재 투자진흥회의를 통해 네 차례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더니 취임 1주년을 맞아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은 투자 활성화 대책의 연장선에 있지만 박근혜정부의 대표 지역정책인 ‘지역행복생활권’ 틀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정부는 이 대책이 생활밀착형 사업을 중심으로 했고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으로 시행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추진 방식은 과거 개발주의시대 것을 그대로 따르고, 내용도 ‘지역행복’과 무관한 ‘투자와 성장’을 위한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담고 있다.

이번 대책은 지역행복생활권 확충 및 지역특화발전 프로젝트 추진, 그리고 규제완화 및 세제 지원 방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앞과 뒤가 따로 놀고 있다. 특히 제시된 규제완화 방안은 지역행복이나 지역 특화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지역의 개발 민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짜여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은 투자 활성화 대책의 연장이지만 전국적인 개발 민원에 ‘맞춤형’ 규제완화로 응답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업조닝(용도 상향), 입지규제 최소 지구 도입, 농업진흥지역에서 건축허용 확대, 산지전용 허가 기준 완화, 투자선도지구 지정 등이 특히 그렇다. 지역행복생활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중점 시책은 환경, 문화, 복지, 교육, 참여 등의 의제가 중심이 될 터인데 제시된 규제완화 방안은 이와는 거리가 먼 개발, 즉 환경을 파괴하면서 문화복지보다 산업경제를 우선하는 맹목적 개발만 부추기게 된다.

가령 그린벨트 해제 지역을 다시 용도 상향을 통해 상업시설이나 공장 설치를 허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개발 특혜이면서 용도지역 체계를 무력화해 도시 관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그린벨트 원조국인 영국은 그린벨트 인근 지역을 ‘하이트 존’으로 지정해 보전지인 그린벨트와 토지 이용의 연속선을 이루도록 관리하고 있다. 민원을 빙자한 근린벨트 해제 지역의 업조닝은 미래의 개발 압력이 되어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그린벨트를 전면 해제하는 구실이 된다.

도심에 입지규제 최소지구 도입은 토지의 특성별로 용도, 건폐율, 용적률 등을 규정해 관리하는 도시계획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규제 때문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나 도쿄 도시재생특구 같은 것을 조성할 수 없다는 정부 설명은 견강부회다. 파리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토지용도, 건폐율, 용적률 등의 규제를 예외화하는 ‘입지규제 최소’는 도시를 방치해 무질서하게 만드는 ‘추한 규제’가 되기 십상이다.

5개 지역개발 제도를 통폐합해 신설되는 ‘투자선도지구’는 건폐율 등의 완화를 위해 65개 법률의 인허가가 의제되고 주택공급 특례 등 73종의 규제 특례가 적용된다. 전례 없이 파격적인 개발규제 완화다. 지역개발 투자를 위해 정부는 그간 많은 개발특별법을 제정해 왔다. 그럼에도 투자가 되지 않는 것은 저성장시대 도래로 개발 수요가 급감한 것과 무관치 않다. 설혹 투자가 활성화되더라도 도시나 지역 환경의 파괴를 비용으로 치르는 지역경제 활성화는 저성장시대 주민행복을 담보하는 지역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규제’에 있다. 정부가 만든 규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정부임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해서 최고 통치권자가 ‘규제가 몸 속 암과 같다’고 선포하면서 규제완화에 국정을 집중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 규제완화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고도성장기에 살고, 그래서 60년대 개발 국가의 역할과 정책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착각한 데서 연유한 것 같다. 저성장시대에는 투자 활성화가 아니라 개발 수요를 능가하는 개발 공급의 과잉, 즉 ‘과개발’의 출구를 마련해주는 것이 순리에 맞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