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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껍데기만 남게 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일감 몰아주기 폐해는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대기업들이 총수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재산을 불려 왔다. 이로 인해 중소·중견기업들은 공정경쟁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액주주들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재벌들의 일탈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고조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음 달 14일 시행을 앞두고 당초 규제대상 208개사 중 20개사가 합병이나 총수 일가족 지분 감소 등의 수법으로 규제를 빠져나갔다고 한다. 느림보 뒷북 규제에 나는 기업들이다.

규제망을 교묘히 피해간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삼성, 현대차 등 세계 일류 기업들답게 정부 규제를 피하는 데도 한 수 위의 능력을 과시했다. 우리나라 세법은 삼성이 발전시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12월 내부거래가 거의 없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인수하는 대신 내부거래가 많은 식자재사업을 떼어내 내부거래 비율을 대폭 낮췄다. 이 부회장이 45.69%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SNS는 삼성SDS와 합병해 규제를 피하게 됐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엠코도 지난주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하기로 하면서 총수 일가 지분율이 35.06%에서 16.4%로 낮아져 규제를 피하고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이대로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빈 껍데기만 남게 된 셈이다.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지 않고 합병이나 총수 일가 지분 축소를 통해 규제를 피하고 세금도 적게 내겠다는 것은 편법이다. 애초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느슨해지면서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정부는 당초 법 제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미비점을 보완하고 규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처벌도 강화해 정책을 우롱하는 대기업들에 정부의 엄벌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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