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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5년 진단] 못 듣는다는 할머니… “안 들리죠?” 질문에 고개 끄덕

입력 : 2013-09-11 18:39/수정 : 2013-09-11 22:32
[노인장기요양보험 5년 진단] 못 듣는다는 할머니… “안 들리죠?” 질문에 고개 끄덕 기사의 사진

줄줄 새는 보험료… 부정수급 실태 (중)

“안 들리세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오른쪽 귀에 대고 고함을 치자 할머니가 힘겨운 듯 끄덕였다. 왼쪽 귀에 대고 물었다. “안 들리세요?” 이번에도 끄덕. 귀는 안 들리는데 질문에 답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할머니 본인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달 초 수도권 한 연립주택. 노인성질환 3등급인 이미자(가명) 할머니의 등급 갱신을 위한 재조사 날이었다.

“화장실은 어떻게 다니세요?”

“기어서 오가거나 제가 부축해서.”

딸의 말에 담당자가 바지를 걷어 무릎을 살폈다. 긁힌 자국도 굳은살도 없었다. 2년쯤 가족요양(하루 1시간 월 20회까지 가족수발을 인정해주는 제도)을 하고 있다는 딸에게 화장실 수발을 부탁했다. 할머니를 부축해 1∼2m 거리의 변기에 앉히기까지 딸은 애를 먹었다. 매일 해본 솜씨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인지조사. “이름이 뭐예요?” “주소는?” 묵묵부답이다. “(딸을 가리키며) 누구예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매일 와서 돌봐주는데 누군지도 몰라요?” 담당자 반복해서 묻자 그제야 할머니 입이 열렸다. “딸.”

당시 상황에 대한 담당자 설명을 들어보면, 할머니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독립보행이 가능하고 대소변 목욕 식사를 혼자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의사소통도 가능했다. 다만 이건 ‘심증’일 뿐이다. 인지능력 측정은 전적으로 환자와 가족의 진술에 의존한다. 의도적 답변거부와 인지능력 저하. 대답을 안 할 경우 둘 중 어느 쪽인지 판가름할 방법이 없다.

담당 직원은 “쇼라는 걸 입증하려면 동영상 같은 물증이 필요하다. 그걸 확보하자면 형사처럼 잠복근무를 해야 하는데 현재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사람이 모자라 2인1조로 다녀야 하는 각종 조사 업무도 대부분 혼자 다닌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의 1인 심사 비율은 80%에 육박한다.

수도권의 또 다른 등급판정 업무 담당자는 “몸도 못 일으키던 어르신이 멀쩡히 길거리를 활보하는 걸 목격했다”는 경험담을 전해줬다. 그는 “그때는 충격 받았다. 지금은 놀라지도 않는다”며 “자식들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모른다’ ‘아프다’ 우기는 어르신들은 한눈에도 어색하다. 그런 경우 2∼3차례 더 조사를 나가 증거를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요양보험의 수혜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에도 치매특별등급 신설 등으로 대상자가 13만명쯤 증가할 전망이다. 만약 약간의 과장진술로 노인들이 조금 더 많은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허위등급은 도미노 부정수급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또 노인의 인권과 욕구 대신 가족 중심으로 제도를 왜곡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거동이 자유로운 환자가 등급을 받으면 수발서비스에 대한 욕구는 낮을 수밖에 없다. 요양보호사가 집을 방문해도 딱히 할 일이 없다. 자연스럽게 가족들은 운동 목욕 같은 신체수발 대신 빨래 요리 청소 같은 가사지원을 더 많이 요구하게 된다. 그래도 남는 시간을 두고는 거래가 이뤄진다. 오지 않는 요양보호사를 대신해 보호자가 출퇴근 기록을 남겨주거나, 방문요양·방문목욕 등을 패키지로 묶어 신청한 뒤 이 중 일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공단에 청구해 받은 돈은 분배된다. 얼마 전에는 가짜로 목욕서비스 비용을 청구한 요양보호사가 적발됐다. 몇 개월을 오갔다는 환자 거주지의 동 호수는 물론이고 오가는 교통편조차 몰라 꼬리가 밟혔다.

지난해 수도권 한 지자체에는 인근 요양원에서 등급을 받기 위해 환자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였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현장 CCTV까지 열어봤지만, 끝내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 담당자는 “화면 속에서 환자가 먹고 있는 게 물인지 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위험을 감수하고 증언해주지 않는 한 증거 잡기가 어렵다”고 답답해했다.

딸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를 돌보는 가족요양보호도 부정수급이 종종 적발되는 분야다. 가장 흔한 방법은 교차신청이다. 가족요양은 일반 방문요양(3급 기준 하루 4시간 월 20일)의 4분의 1만 인정해준다. 돈 차이는 월 30만원 안팎, 1년이면 300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말 적발된 사례는 전형적이다. 3등급 판정을 받은 시어머니를 둔 요양보호사 둘이 서로 상대방 시어머니를 돌보는 것처럼 꾸며 돈을 청구했다. 부당청구가 걸린 건 병원기록 때문이었다. 수발기간에 한 할머니가 대구 딸네에서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 게 건보공단 자료로 확인된 것이다. 추궁 끝에 수급자 바꿔치기까지 확인했다.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건보공단은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감시인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효과가 좋은 건 내부자 제보다. 올 들어서도 6월까지 87억1652만원의 부당이득금을 확인했다. 신고포상금은 최근 크게 증액돼 일반 신고자에게는 일반인 500만원, 내부 고발인에게는 5000만원이 지급된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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