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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애슐리 박 (8) 로렌 커닝햄 목사 “하와이 열방대학으로 오세요”

입력 : 2013-03-25 17:16/수정 : 2013-03-25 21:32
[역경의 열매] 애슐리 박 (8) 로렌 커닝햄 목사 “하와이 열방대학으로 오세요” 기사의 사진

우리 부부가 로렌 커닝햄(예수전도단창설자, 열방대학총장)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2000년 시카고 한인세계선교대회에서였다. 그 후 우리는 2003년 JAMA대회에 주강사로 오신 그분을 3일 동안 가까이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때 목사님은 하와이에 있는 열방대학을 꼭 한번 방문하라고 권하셨다. 특히 남편의 전공인 타문화 이해에 관해 열방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제안하셨다. 같은 미국이지만 태평양을 건너야 가는 곳이라 엄두를 못 내었는데, 2005년 연말이 되자 왠지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다녀와야 될 것 같았다.

2005년 크리스마스 한주 전에 하와이에 도착했다. 열방대학 관계자들을 만나 강의 계획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먼저 이곳에서 훈련을 받아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세 아이와 함께 2006년 여름 5개월간의 DTS(제자훈련학교)를 받기위해 미시간 집을 떠났다.

하와이에 도착해 기대에 부풀었던 나는 며칠 후 깜짝 놀랐다. 학비를 포함해 다섯 식구의 경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었던 것이다. 공과금 등 이것저것 생활 준비를 대충 마무리 했음에도 여전히 12000달러가 더 필요했다. 뭔가 실수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온 가족이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지’라며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남은 학비를 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의 가족들에게라도 연락할까. 그때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5:10)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묵묵히 기다렸다.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 우리가 속한 공연예술(Performing Arts:PA) DTS에 우리의 상황이 알려졌다. PA리더는 50여명의 학생과 스태프를 불러모아 우리를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들은 기도를 하는 동시에 지갑을 열었다. 때로는 동전까지 모두 내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우리 사정을 알리기 시작했는 지 모르는 사람들도 동참했다.

마감인 목요일, 그들의 간절한 기도와 헌신에도 학비는 부족했다. 대학행정처는 다음 월요일까지 학비를 완불하지 않으면 등록할 수 없고 이곳에 머물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PA리더는 다시 50명을 불러 모았다. 자신의 돈을 다 내놓고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토요일 아침, 우리 리더의 함성이 전화를 통해 들려온다. “너희,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돼!” 어제 우리 가족의 소식이 열방대학 안에 퍼졌고 그 소식은 DTS 전체를 담당하시던 커닝햄 목사님의 부인, 달린 사모님도 듣게 되셨다. 소식을 듣자, 달린 사모님은 바로 그 날 그중고차를 판 돈 9000달러를 우리에게 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다고 했다. 커닝햄 목사님도 동일한 음성을 들으셨다. 월요일 아침 9000달러 수표를 건네주시며 달린 사모님은 너무 기쁜 모습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PA학교에 속한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몇몇은 마약이나 갱단에 관여했다가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사는 이들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데 도리어 그 젊은이들의 눈물의 기도와 경제적 도움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의 공급만 의지하며 때론 자동차를 팔아야 하는 선교사들, 우리가 그들에게 헌금을 해야 하는데 그들의 순종의 헌금으로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우셨다. 그 어느 것도 내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킹덤 경제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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