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처럼 이끼처럼 서서히 번지는 서정의 화폭… 유종인 네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
“우리 아파트 사 층 사는 꼽추 아줌마는,/ 남편이/ 아파트 화단의 하나뿐인 대추나무 대추 따는 걸/ 그 뒤편에서/ 수양딸처럼 망을 봐주고 있다// (중략)// 원경(遠景)을/ 근경(近景)처럼 당겨 보는/ 꼽추 여자/ 망루처럼 삼엄한 눈길”(‘꼽추 여자 대추 따는 남편’ 부분)
유종인(43·사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문학과지성사)은 대추 따는 남편을 위해 망을 봐주는 수양딸 같은 시선이 큰 미덕으로 돋을새김 된다. 그 시선이란 ‘원경(遠景)을 근경(近景)처럼 당겨 보는’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보기 위해 기존의 원근법을 해체하는 망원경의 시선인 것이다.
그 시선은 원경을 원경으로만, 근경을 근경으로만 파악하던 고정된 인식에 대한 파기를 의미하기에 시인의 눈은 망루에 선 파수꾼처럼 삼엄하다. 원경을 근경으로 당겨 보는 시선은 다른 시에서도 드러난다.
“그대가 오는 것도 한 그늘이라고 했다/ 그늘 속에/ 꽃도 열매도 늦춘 걸음은/ 그늘의 한 축이라 했다// 늦춘 걸음은 그늘을 맛보며 오래 번지는 중이라 했다// (중략)// 한끝 걸음을 얻으면 그늘이/ 없는 사랑이라는 재촉들,/ 너무 멀리/ 키를 세울까 두려운 그늘의 다솜,// 다솜은 옛말이지만/ 사랑이라는 옷을 아직 입어 보지 않은/ 축축한 옛말이지만”(‘이끼 2’ 부분)
시의 한 구절이 시집 제목이 되기도 한 이 시에서 ‘그대’는 이끼를 지칭한다. 그늘에 아무도 모르게 번져 있는 이끼다. 그 이끼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늘 속에 번져 있는 이끼는 또 다시 ‘원경을 근경처럼 당겨 보는’ 시선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 숨어 있는 그늘에서 이끼를 찾아내어 그 안의 또 다른 그늘을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대’를 깨어나게 하는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원경을 근경처럼 당겨보면 그대라는 이끼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늘을 맛보며 오래도록 번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그늘처럼, 이끼처럼 점점이 번지는 서정의 화폭인 것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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