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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강태진] 미래 지도자는 과학적 소양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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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사회를 꾸려나가는 힘과 지혜는 어디서 나올까? 테크네(techne)일까, 아니면 프로네시스(phronesis)일까? 그리스어로 테크네는 기술 혹은 예술을 의미하고 프로네시스는 실천적 지혜를 뜻한다. 큰 기관이나 집단지성을 관리하는 데는 둘 다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치를 배분한다는 명분으로 전문성의 뒷받침이 없이 하는 정치는 애매할 때가 많아 그럴 듯한 것 같으면서도 결과를 내지 못해 구체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 아랍의 봄에 힘입어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리비아의 총리로 취임한 압델라힘 알 키브, 국가부도의 벼랑 끝에서 그리스의 총리로 취임한 루카스 파파데모스, 방만한 재정 위기 극복의 과제를 안고 이탈리아의 총리가 된 마리오 몬티, 18개월간의 무정부상태를 끝내고 새 정부를 이끌게 된 벨기에의 엘리오 디 루포 총리.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비정치인 출신 전문가라는 점이다. 알 키브 총리는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전기공학도이며, 파파데모스 총리는 MIT에서 전기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몬티 총리는 예일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전문가이며 루포 총리는 화학 박사이다.

고위 공직자 25%만 이공계 출신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국민의 힘을 모아 최선의 위기극복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정치가보다 전문가가 더 합당한지도 모른다. 이들 지식인이자 지혜인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의 방법을 모색하는 데 훈련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생각과 실천이 국가의 재건, 시스템의 개혁, 그리고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중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90% 이상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스타를 거명했다. 반면에 알고 있는 과학자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50% 가까운 사람들이 56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대고, 오직 4%만이 현역 과학자의 이름을 거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조사를 실시한다면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학자들의 반성도 있어야 하겠지만 전문가 그룹이 존재감조차 없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나라가 어지럽고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선동적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전문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위기 때는 전문가 역할 중요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시진핑 부주석은 모두 공학도다. 이들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8명이 이공계 출신이다.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25%에 불과하다. 미국은 535명의 하원의원 가운데 단지 22명(4.1%) 만이 이공계 출신이다. 그러나 리처드 뮬러 UC버클리대 교수가 쓴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원제: Physics for Future Presidents)이라는 책이 미국에서 널리 읽히는 걸 보면 이제는 정치지도자들이 과학적 소양과 전문지식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 시대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뮬러는 이 책을 통해 테러리즘, 에너지, 원자력, 우주, 그리고 지구 온난화 이슈와 관련된 과학적 이론을 쉽게 설명하여 일반 대중들의 이해를 도우면서, 오늘날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 있어서 과학적 전문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과학적 지식과 실천만으로 정부나 국가를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복잡다기한 국가적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공계를 포함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국정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강태진 서울대 교수 재료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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