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목사의 차이나통신(6)

Է:2011-10-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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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윈, 윈(win-win)전략을 통한 효율성

현시대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기업과 국가간에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이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굴의 투지와 정신으로 험한 세파와 싸워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최근 국제정세의 다변화가 가져오는 국가간의 자원전쟁 이라든지 환율전쟁을 통해 끊임없는 경쟁의식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성경을 통해 보더라도 이삭의 가정에 리브 가를 통해 쌍둥이가 출생이 되는 가운데 뱃속 에서부터 에서와 야곱이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출생하는 장면(창 25:19-26) 이나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하는 장면 (눅 9:33-34) 그리고 자기자녀를 위한 좋은 자리를 부탁하는 어머니의 모정 가운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마 20:20-28) 사람이 살아가는 현장 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끊임없는 자리다툼 내지는 세력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목회현장이나 선교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들 간에 협력선교를 통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야함에도 실상이 그렇지 못해 서로간의 불신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로 인해 사역의 순기능적인 면보다는 역기능적인 면으로 인하여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역에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교회도 교회 간에 서로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큰 안목을 가져야 함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원리로 인해 오히려 사회의 지탄을 초래함으로 서로 간에 불신의 장벽은 높아 가기만 한다.

선교현장의 사역이 깊이를 더 할수록 폭넓은 사역을 할수록 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동역자들 간에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올바른 파트너십 관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지는 서로 상생관계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일들이 상대방이 없는 일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 마틴 부버가 말한 것처럼 ‘나와 그것’과의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관계가 정립이 올바로 되어질 때 비로소 관계형성을 통한 사역이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사실 이다.

한국교회가 선교의 붐이 일어나면서 부터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너도 나도 선교현장에 뛰어 들면서 선교현장에 질서는 사라져 버리고 조화와 균형은 깨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서로가 융합 하지 못하고 교회와 교단 목회자간에 질시와 반목이 존재함으로 세상이 보는 기독교의 가치관이 이미 상실 된지 오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구호로만 메아리칠 뿐 말씀을 실천하는 능력은 용도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세상이 보는 기독교가 독불장군식이나 유아독존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성숙한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빛 과 소금의 역할과 사명이 아름답게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선교지와 교회 간에도 서로 상생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나만 살고 너는 죽는’식이나 ‘너만 살고 나는 죽는’ 것도 아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윈윈(win-win) 전략을 통한 목회지나 목회자 그리고 선교지나 선교사간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통한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국가도, 지구촌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살 수 있는 상생의 길과 윈윈(win-win)의 길을 도외시하면서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모두 공멸하고 만다는 공통분모를 인식 하고 있기에 국가간에 사회간에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대로의 사회적 책임을 서로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몸도 어느 한곳이 부조화를 이루게 되면 각 기능이 면역성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에는 중대한 질병으로 발전하듯이 모든 면에 조화와 균형을 통한 상생과 윈윈(win-win)으로 양방 간에 의사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

효율적인 중국선교를 위해서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이 문제를 고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언젠가는 주님 앞에서 결산할 날이 있기 때문 이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나 신학생들을 섬기는 신학자들이나 선교지를 섬기는 선교사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자기 성찰을 통한 바람직한 주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우리 앞에 거대한 장벽으로 닥아 올 때가 많이 있다.

지금 시대는 세상의 지혜가 충만하고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들이 쉬운 일 만은 아니다. 갈수록 사단 마귀는 여러 모양과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서 믿음으로 세상을 정복 할 수 없도록 곳곳에 함정과 올무를 놓아두고 우리들의 약점을 이용 할 뿐만 아니라 방심한 틈을 이용하여 신앙을 약화 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교회도 사천성 지진이나 청해성 위수지역 지진과 각종재난을 통해서 다시 각성 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들의 선교 방식이나 방법을 새롭게 현실 상황에 맞도록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중국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중국 목회자들과 한국목회자들 그리고 선교사들이 서로 상생과 윈윈(win-win)전략을 통한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 감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주님의 심정을 지니며 안목을 넓게 하면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 한다.

국제정세가 다변화 하는 가운데 하루를 예측 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예기치 못한 난기류가 형성 되어지고 있으며 자원의 고갈이나 자연재해를 통한 천재지변 현상 이 계속적으로 발생 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시대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지니고 영적 지도자로서 세상을 향해 선지자적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해야 될 때이다. 교회나 지도자들이 세상을 리더 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상에 뒤쳐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앞에 안타까움을 토로 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다양한 가치관이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 앞에 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르게 진단하고 허울 좋은 군상들 앞에서 세례요한 같은 사명을 가지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는 말씀처럼 시대를 향해 파수꾼과 같이 바른 청지기적인 삶이 있어야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계 3 :17) 라고 말씀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분명히 말세지말 임을 시대의 징조를 통해 알고 있다. 이미 성경이 말씀 하고 있는 종말의 징조가 곳곳에 일어나고 있음으로 우리를 향한 영적 각성을 요구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노아 시대처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는 주님의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우리는 상생과 윈윈(win-win)전략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잘 알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고도의 전술과 전략을 통해 우리를 미혹하는 사단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있을 때만이 중국선교는 물론 세계선교 그리고 목회현장도 더욱 풍성하게 될 것 이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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