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4형제 ‘영·웅·호·걸’… 한 달에 3번의 출산 네 쌍둥이 육아일기

Է:2011-10-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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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4형제 ‘영·웅·호·걸’… 한 달에 3번의 출산 네 쌍둥이 육아일기

지난달 말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났을 때 부부 윤수일(39) 문은정(31·여)씨는 네 명의 쌍둥이 중 둘째와 첫째를 각각 안고 있었다. 당초 충북 음성의 윤씨 부부 집으로 그날 저녁 찾아가기로 했던 취재 일정은 진료 차 상경한 그들을 병원에서부터 동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무슨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까.

“첫째 둘째가 받은 갑상선 검사 결과를 보고 예방접종도 하려고요. 첫째는 안과 진료도 있어요.”

지난 5월 11일 임신 27주 만에 조산한 첫째 태영이는 미숙아 망막증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너무 빨리 나와 망막 혈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 분비도 적어 약을 먹는다.

쌍둥이들의 출산 예정일은 8월 7일이었다. 자궁 수축 억제제를 복용 중이던 문씨가 약을 바꾸는 사이 자궁이 3㎝가량 열려 태영이가 나왔다. 다음날 태웅이까지 빠져나왔다. 더는 못 나오게 자궁 입구를 묶고 4주를 버텼다. 6월 7일 셋째 태호, 넷째 태걸이가 먼저 나온 형제들과 재회했다.

네 형제는 ‘태’자 돌림에 ‘영웅호걸’을 한 글자씩 차례로 나눠가졌다. 외할아버지 작품이다. 외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춘하추동 열혈남아 동서남북 등 네 글자짜리는 있는 대로 가져다 이름을 지어봤다.

세상에 나올 때 체중은 순서대로 930g, 1㎏, 1.21㎏, 1.39㎏이었다. 제때 태어나면 보통 3.4㎏이다.

“지금은 첫째가 4㎏, 둘째랑 셋째는 5.5㎏, 넷째는 5㎏이에요. 셋째가 처음에 엄청 말라서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듯했어요. 첫째가 다른 애들이랑 차이가 많이 나요. 빨리 따라잡아야 할 텐데.”

윤씨에게 안긴 둘째가 작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첫째 둘째는 일란성, 셋째 넷째는 이란성 쌍둥이다. 난임(難妊)이던 부부는 인공수정을 했다. 수정란 3개 중 하나가 분열됐다. 그게 첫째 둘째다.

태영이는 태웅이보다 까맸다. “황달기가 있어 우루사를 먹는다”고 문씨가 말했다. 아기들은 모두 인큐베이터(보육기) 신세를 졌다. 태영이가 가장 늦게 퇴원했다. 몸통을 가르는 수술을 두 번 받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심장 대동맥이랑 폐동맥을 이어주는 혈관이 자동으로 닫혀야 한대요. 그게 안 막혀서 약물 치료를 했는데 그래도 안 닫혀서 처음 수술을 했어요. 두 번째는 탈장 수술이었어요.”

상의를 걷어 올린 태영이의 등에는 절개 흔적이 하얀 가시나무 줄기처럼 남아 있었다. 길이 5㎝의 흉터는 몸통 너비의 절반이었다. 태영이는 진찰을 받으며 끅끅 소리를 냈다. 얼굴이 붉게 일그러졌는데 울진 않았다. 문씨가 말했다. “첫째가 인공호흡기를 오래 해서 우는 소리를 못 내요. 저게 우는 거예요. 넷이서 함께 울면 첫째를 제일 늦게 달래요. 소리를 안 내니까.”

윤씨가 약 타러 간 사이 문씨 품에 안긴 태영이는 잠들었다. 유모차에 누운 태웅이가 문씨를 보며 끙끙댔다. 문씨가 “잠시만 안아주겠느냐”며 태영이를 맡겼다. 작고 가벼운 몸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문씨가 태웅이를 들어올린 사이 태영이를 유모차에 눕혔다. 아기는 꽁꽁 언 것처럼 잤다. 그러다 숨을 크게 들이켰는데 어른 손바닥만한 몸통이 한껏 부풀었다 꺼졌다. 정수리에서 목까지 얕은 피부 아래로 푸른 실핏줄들이 흘렀다. 마지막인 안과 검사까지 진료는 2시간30여분이 걸렸다.

음성에 도착했을 땐 해가 넘어간 뒤였다. 셋째 태호와 넷째 태걸이는 거실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있었다. 윤씨가 “얘가 떼쟁이예요”라고 하자 지목된 태걸이는 기다렸다는 듯 울었다. 윤씨가 안아서 달랬다.

네 아기가 나란히 누웠다. 넷째가 먼저 찡그리며 울었다. 둘째가 영향을 받은 듯 칭얼거렸다. 고개를 바깥쪽으로 돌린 첫째는 인상을 찌푸렸다. 셋째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기들은 사방으로 팔다리를 꿈틀거렸다. 치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셋째가 넷째를 향해 재채기를 했다.

부부와 윤씨의 어머니 손옥산(58)씨는 우는 아이를 번갈아 달랬다. 윤씨는 나란히 누운 둘째 셋째에게 양손으로 각각 젖병을 물렸다. 서로 멱살을 잡고 마셨다. 아기들은 800g짜리 분유를 매일 한 통씩 해치운다. 개당 2만∼5만원 수준이다. 모유는 달려서 거의 첫째만 먹는다. 종종 젖동냥을 받는다.

-분유랑 기저귀가 월급으로 해결됩니까.

“벅차죠. 지금까진 주변에서 선물로 사주셨는데 월급으로 감당하긴 어려워요.”

-병원비는 어떻게 충당합니까.

“건강보험공단에서 미숙아한테 나오는 게 있어요. 1인당 병원비 1000만원 미만은 금액의 80%를 지원하고 1000만원 이상은 1000만원을 지원해요.”

지금까지 청구된 네 아기의 병원비는 차례로 1800만원, 700만원, 400만원, 300만원 정도다. 통장 잔액은 이미 바닥났다. 우유를 마신 아기들은 배가 불렀는지 잠잠해졌다.

문씨가 임신했을 때 병원에선 아기를 골라 낙태하는 선택 유산을 권했다. 다 낳기엔 산모가 위험하고 아기들 건강도 보장할 수 없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윤씨는 “고민을 많이 했다”며 말했다.

“아이들도 소중하지만 산모가 엄청 위험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때는 아내가 더 소중했으니까요. 의사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줬으면 했는데 낳겠다는 산모 의지가 원체 강했어요.”

-왜 낳겠다고 했습니까.

“교회 목사님이랑 통화하는데 ‘생명이니까 낳아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전 원래 낳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해주는 분은 없었거든요. 목사님 말씀에 의지해서 남편을 설득했어요.”

부부는 선택 유산을 권하지 않는 병원으로 옮겨 출산했다. 문씨는 두 명을 이틀에 걸쳐 낳고도 26일을 더 분만실에 있었다. 다 낳을 때까지 똑바로 눕지 못했고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2008년 말 결혼한 부부는 한 병원에서 일하다 만났다. 윤씨는 정신과 보호사, 문씨는 간호사였다.

“직원들은 정신과 환자를 좀 무시하는 게 있거든요. 반말하고 욕도 하고. 그런데 남편은 환자들한테 존댓말을 썼어요.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어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제가 먼저 사귀자고 했죠.”

-결혼 전엔 몇이나 낳을 계획이었나요.

“아내가 아기를 좋아해서 많이 낳을 생각이더라고요. 근데 저는 자녀 생각이 별로 없었거든요. 낳아서 고생시킬까봐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모델이 될 만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다 보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안 낳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장남인 윤씨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됐다. 윤씨는 “아버지 기억은 없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해선지 몰라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어머니 손씨가 양육과 생계를 다 떠맡았다.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나요.

“사춘기 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나고 보니 한 사람 나름의 인생으로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비록 자기 가정엔 소홀했지만.”

윤씨는 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의무감으로 답하는 듯했다. 평정심을 보여주려는 행동 같았다. 문씨가 말했다. “(남편이) 남자 어른에 대한 두려움이 많더라고요. 심리치료 하는 곳을 찾아가 봤는데 그땐 아버지에 대해선 말도 안 꺼냈어요.” 윤씨는 “그 존재 자체를 제가 부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아내가 아기들을 낳고 지난 8월 중순부터 5주간 매주 토요일 ‘아버지 학교’에 나갔다. 아버지 학교는 집단 상담과 토론 등을 통해 가장의 역할을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마지못해 갔죠. 아내가 접수를 해 놨더라고요. 제가 모델이 될 만한 아버지를 보고 자라지 못해서 후천적으로라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기회를 만들어준 아내에게 내심 고마웠죠.”

-좀 나아졌나요.

“제 생각엔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100% 좋아졌다고 할 순 없고, 그전에는 피하고 외면하던 어른에게도 제 의사는 전달할 수 있으니까. 바람직한 아버지 역할이 어떤 건지도 알게 됐어요.”

-어떤 아버지가 되려고 합니까.

“애들이 친구같이 생각하고 자기 고민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들이 대부분 자긴 안 하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가 많잖아요. 전 아이들이 커 가면서 제 행동 보고 배울 수 있게 의도적으로 좋은 행동을 하려고요.”

그는 아이들이 정직하길 바란다고 했다. “요즘 사회문제는 대부분 거짓말하고 잘못을 숨기기 때문에 생기잖아요. 모든 아이가 다 속이면서 살아도 우리 애들은 정직하게 자라면 좋겠어요.”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 아닙니까.

“그게 염려는 되는데,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대화는 밤에 끝났다. 아기들은 잠들었다. 둘째 태웅이만 아빠에게 안겨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음성=글 강창욱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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