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일본, 한국보다 지출 엄격 규제… 1만엔 이하도 3년간 공개
‘이도베이(井戶?).’ 일본 정가의 오랜 격언이다. ‘우물과 울타리’라는 뜻으로 정치를 하면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결국 이 두 가지만 남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후 일본 사회에서 이 단어는 사어(死語)가 됐다. 뇌물수수 사건으로 얼룩진 현대 정치사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자와 스캔들=지난 6일 오전 도쿄시내 가스미가세키(霞關)에 위치한 도쿄지방법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의 정치자금법 위반 첫 공판을 취재하려는 기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오자와 전 대표를 법정에 세운 혐의는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기재 누락이었다. 그는 2004년 4억엔(약 61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해 땅을 샀지만 관련 내역을 신고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내년 9월 민주당 대표선거 등을 앞두고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정치인의 기소 자체가 갖는 의미와 파장을 주목했다. 오자와 측의 회계담당 비서 3명이 구속되는 것으로 마무리 수순을 밟았던 수사가 방향을 튼 건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의 강제기소 결정이었다. 최초 의혹이 제기된 이후 오자와가 “정치자금”(2007년 2월)으로 인정했다가 “은행융자”(2009년 10월)→“개인자산”(2010년 1월)이라며 돈의 출처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온 부분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오자와 전 대표가 회계상 실수에 불과하다며 자신에 대한 강제수사를 ‘사법부의 자살’에 비유하며 반발한 것과 달리 정치자금 회계의 관리감독과 허위기재 등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방송사 소속 사회부 법조 담당기자는 “그동안 정치자금법 위반사범에 대해 대가성 여부에 초점을 맞춘 실질범(實質犯) 판단을 중시했다면 오자와 사건을 전후해 기재 누락 등 형식범(形式犯)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스캔들과 규제 변천사=일본의 정치자금제도는 스캔들과 궤를 같이해 왔다. 1948년 화학업체 쇼와전공(昭和電工)의 정계 대출로비 사건을 계기로 정치자금규정법이 제정됐지만 이후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관련법과 제도 정비는 ‘사후약방문’식으로 이뤄졌다. 미국 록히드사의 민항기 판매로비 사건(1976년)과 정보산업회사인 리쿠르트의 뇌물성 주식 양도사건(1988년) 이후 수입지출보고서 기재 의무와 벌칙이 강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7년엔 마쓰오카 도시가쓰(松岡利勝) 농수상이 중의원 의원 시절 임대료 없는 의원회관에 후원회 사무실을 두고도 매년 3000만∼4000만엔의 사무실 유지비를 지출한 것 등이 문제가 되자 중의원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 직후 정치자금규정법은 더욱 엄격해졌다. 이전엔 불분명했던 국회의원 관계정치단체(개인후원회)가 명확히 규정됐고, 회계내역에 대한 감사를 거치는 감사인제도가 생겨났다.
20년간 정치부 기자로 현장을 누빈 일본 언론사 한 해설위원은 이렇게 꼬집었다.
“자민당은 집권 시절 기업으로부터, 민주당과 사회당은 노동조합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주로 받았어요. 스캔들도 자연히 돈을 주로 받는 쪽에서 터졌죠. 변화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자민당 소속 중의원의 한 의원이 기업 기부금을 없애자며 개인 1000명을 상대로 기부금 모금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100명도 되지 않았어요. 해가 바뀌니 절반, 또 절반으로 줄어드니 그 의원도 두 손 들더라고요. 결국 정당조성금(국고로 지원되는 정당보조금)을 높이거나 기업과 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길을 열어두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한·일 규제 비교=수입 규제 측면에선 한국의 제도가 낫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우 국회의원후원회 격인 국회의원 관계정치단체 외에 지역 정당조직, 정당 등이 지정한 정치자금관리단체가 각각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이름도 ‘국회의원○○○후원회’가 아닌 연구회나 모임, 포럼 등 자유롭게 짓는다. 때문에 누가 어디로부터 얼마의 후원금을 받았는지 집계하려면 복잡한 단체를 일일이 후원 정치인별로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오자와 전 대표가 문제의 4억엔을 처리한 개인 정치자금단체 역시 ‘리쿠잔카이(陸山會)’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반면 씀씀이 규제 부분은 일본이 더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국회의원의 정치자금단체의 경우 1만엔(약 15만원) 이상의 모든 지출 내역을 수입지출보고서에 기재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 1엔 이상 모든 지출을 신고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자체적으로 이를 지키고 있다. 1만엔 이하 소액 영수증을 포함해 모든 지출 증빙서류는 3년간 보관해야 한다. 이들 서류를 볼 수 있는 기간도 한국은 3개월에 불과한 데 비해 일본은 3년간 볼 수 있다.
일본 총무성 정치자금과 야마시타 다케시(山下剛史) 사무관은 “1만엔 이하 소액 지출도 액수가 의심스러우면 총무성에서 소액 영수증 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며 “공개를 거부하면 총무성 정치자금 공개사이트에 해당 의원을 누락 의원으로 등재해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고, 영수증 보관 의무를 위반했을 땐 3년 이하 금고나 50만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도쿄=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