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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윤종빈] 정당의 위기, 시민사회의 위기

[시론-윤종빈] 정당의 위기, 시민사회의 위기 기사의 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등록이 마감됐다. 그동안 가장 큰 관심사였던 박원순 후보의 민주당 입당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당정치 위기 상황에서 무소속 후보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과 박원순의 야권 통합 경선 승리로 기성 정당은 초라한 처지다. 민주당은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지만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한나라당은 나경원 후보가 나섰지만 지지율 열세로 집권 여당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박원순, 시민단체 후보 아니다

안철수 교수와 박 후보의 정치권 등장으로 한국정치가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기성 정당, 기성 정치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고, 제3세력의 등장 가능성에 국민은 한껏 들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잇따른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파 간 기득권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복지당론을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였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열망은 어느새 잊고 그들만의 정치논리에 충실하다.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의 사퇴 발표와 번복을 하루 만에 처리하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박 후보가 공식적인 민주당 입당을 거부하자, “입당을 안 해도 이미 민주당 후보”라고 끝없이 구애하고 있다.

박 후보는 가장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다. 반(反)한나라당 정서의 범(汎)중도 부동층이 박 후보에 몰리고 있다. 그들은 민주당 지지는 주저하지만, 박 후보 지지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다. 기성 정당의 기성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13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박 후보는 이석연 변호사가 불출마를 선언하며 개탄했던 “정치권의 철옹성 벽”에 부딪힐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검증을 명분으로 각종 근거 없는 의혹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성 정치의 몰지각한 진흙탕 싸움에 휘말려 품위를 잃지 않길 바란다. 과거의 실수가 있었다면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기 바란다. 시민운동의 대표적 인물로서 기성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른 내공과 진솔함을 보여주기 바란다. 터무니없는 네거티브 공세는 정치불신, 정당위기를 악화시키고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박 후보를 ‘시민사회 후보’ 혹은 ‘시민단체 후보’라고 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시민사회는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와 구분되는 폭넓은 개념이고, 실제로 박 후보는 경실련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와는 이념적 정체성은 물론 시민운동의 방식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 지지·반대운동에 대한 입장 또한 시민사회 내부에서 달랐다.

정치·경제권력 감시는 시민 몫

박 후보의 등장으로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로 시민운동을 더 이상 시민운동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에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이 있다. ‘공익성’과 ‘비정파성’이다. 박 후보 개인이 시민운동 경력을 기반으로 ‘반(反)기성정치’를 주창하며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박 후보가 기성 기득권 정당인 민주당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같은 역사 인식을 공유하며, 시민사회 후보, 시민단체 후보라고 주장하는 순간, 시민운동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 신뢰의 기반인 정파적 중립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박 후보를 시민사회 후보로 착각하고 있다. 박 후보가 출마 명분으로 시민사회의 ‘기계적 중립’을 포기한 순간, 안타깝게도 그는 더 이상 시민사회 후보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시민단체는 정당, 국회, 언론보다 더 높은 신뢰를 받는 집단이다. 시민단체 이름으로 선거에서 직접 후보를 출마시키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국민들이 혼란에 빠진다. 후보 자질과 정책을 철저히 검증하되, 최종적 판단과 선택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기자.

시민운동이 아직 제3섹터에 남아 할 일이 많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시민과 시민사회만이 정치와 정당의 위기를 치유할 수 있다. 시민운동이 정파성을 포기해야 정치도, 시민사회도 함께 살 수 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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