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커플더러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 같대요”

희곡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로미오와 줄리엣’은 닳고 닳은 레퍼토리임에도 언제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레 버전이다. 다음 달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음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33·줄리엣 역) 김지영(29·줄리엣 역) 이동훈(25·로미오 역),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용걸(38·로미오 역)씨를 21일 예술의전당 내 사무실에서 만났다. 말 그대로 한국 발레계의 ‘별’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0년 김주원 김지영 김용걸 이원국을 주인공으로 국내 초연된 적이 있습니다. 캐스팅이 거의 바뀌지 않았는데, 무용수들이 최고 기량을 유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발레계 후배들이 제대로 크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지 않을까요.

△김지영=그렇지 않아요. 공연이 열 번이었다면 신인 중에서도 할 만한 친구들이 많았을 거예요. 트레이너들이 ‘이 역할은 연륜 있는 사람들 위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 거죠.

△김주원=발레단만 해도 정말 좋은 후배들이 많아요. 이은원 김리회 박슬기 고혜주…. 더 말할까요?(웃음) 특별한 무용수들이에요. 빨리빨리 좋은 예술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동훈씨만 유일하게 처음인데 선배들과 연기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이동훈=어려운 작품이에요. 내면 연기가 겉으로도 표현이 잘 돼야 하는데, 다들 선배이고 경험이 한 번씩 있으시잖아요. 김주원 선배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세요. 어색해서 못하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하게끔 리드해주시는 거죠.

△김주원=동훈이가 주역을 많이 해서 정말 잘해요. 연습했을 때 놀랐어요. 설렘을 주는 파트너이고, 든든하고 안정돼 있어요. 처음 동훈이를 봤을 때보다 감정적으로도 깊어져 있고요. 공연이 너무너무 기다려지고…. 이번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도하고 있는 (프랑스 스태프) 베르니스 코피에테르도 저희 커플더러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 같다’고 하더라고요.

-줄리엣의 캐릭터가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다면서요?

△김주원=남자보다 훨씬 강하고 주체적인 캐릭터죠. 먼저 사랑에 빠지고 먼저 키스를 하고 먼저 안아주고 먼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김지영=현대적인 줄리엣이에요. 오만가지의 감정을 갖고 있고요. 하지만 무엇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어요. 상황에 저를 맞추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나름대로의 방식이 나오겠죠.

-로미오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동훈=김주원 선배의 줄리엣이 ‘사랑 그 자체(Love)’라면 로미오는 ‘러버(Lover)’라고 생각해요. 남자답게 리드하는 것보다 순수한 아기처럼 잡혀 살아야 할 것 같은 로미오….

△김용걸=저랑 지영이 같은 경우는 항상 오빠 동생 사이였기 때문에 그걸 파괴할 순 없을 것 같아요.(웃음) 지영이가 아무리 강하게 하더라도 저 자체(의 캐릭터)가 강해요. 안무가의 의도는 ‘모성애로 상징되는 여성의 강함’이죠. 저는 어린 로미오를 할 순 없지만, 남자는 60∼70대가 돼도 사랑에 빠지면 어려진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김용걸과 김지영은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11년 전의 일이다).

-김용걸씨는 국립발레단 단원이 아닙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용걸=최태지 국립발레단장님이 연락하셔서 ‘오디션을 본다’고 하셨어요.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제 나이가 있기 때문에 춤을 출 계획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디션을 볼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결국엔 다른 분들과 똑같이 오디션을 치른 거예요. 캐릭터라든지 여러 신체적 조건이 맞았나 봐요.

-김용걸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도 재직 중인데.

△김용걸=학생들에게 매일 새로운 걸 주고 싶은데 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공연을 하면서 다시 저 자신을 채워나갈 수 있어요. 가르치는 것만 하면 채워지지가 않고 결국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걸 줄 수 없지요.

-김주원 김지영씨는 일반인이 아는 몇 안 되는 발레리나 중 하나인데. 국립발레단이 추진하는 발레 대중화 작업에 대표 무용수로서 어느 정도 사명감을 느끼고 있나요.

△김주원=국립발레단의 얼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죠. 하지만 스타라고들 하시는데 스타는 아니에요. 사실 사람들은 잘 몰라봐요. 단지 춤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제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던 거죠.

△김지영=저희 역할은 가장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강수진의 발’은 많이 알지만 그로 인해 발레 관객이 늘어난 건 아니잖아요. 제가 춤을 잘 추고, 입소문이 많이 나서 관객이 느는 게 발레 대중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