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장생포 우체국

Է:2011-07-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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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1970~ )

지난 밤 바다엔 폭풍주의보가 내렸었다

그 사나운 밤바다에서 등을 밝히고

누구에게 무슨 긴 편지를 썼다는 말인지

배에서 내린 사내가 우체국으로 들어온다

바다와 우체국 사이는 고작 몇 미터가 될까 말까

사내를 따라 문을 힘껏 밀고 들어오는 갯내음,

고래회유해면 밖의 파도소리가

부풀어오른 봉투 속에서 두툼하게 만져진다

드센 파도가 아직 갑판을 때려대고 있다는 듯

봉두난발 흐트러진 저 글씨체,

속절없이 바다의 필체와 문법을 닮아있다

저 글씨체만 보고도 성난 바다 기운을 점치고

가슴을 졸일 사람이 있겠구나

그러고 보면 바다에서 쓴 편지는 반은 바다가 쓴 편지

바다의 획순을 그대로 따라간 편지

수평선을 긋듯 반듯하게 접은 편지를 봉투 속에 집어넣고

뭍에 올랐던 파도소리 성큼성큼 멀어져간다

뿌- 뱃고동소리에 깜짝 놀란 갈매기 한 마리

우표 속에서 마악 날개를 펴고 있다.


폭풍주의보가 내린 밤바다에서 한 사내가 긴 편지를 쓰고, 아침에 우체국에 와서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낸다. 바다에서 쓴 편지는 반은 바다가 쓴 것이란다. 바닷사내와 편지, 이 절묘한 불협화가 시를 긴장시킨다. 달리는 야생마가 포근한 거실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들끓어오르는 바다와 봉두난발하는 필체. 삶은, 혹은 바다는 언제나 힘차게 끓어오른다. 희망도 그렇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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