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현동] 정치인과 재벌
“굳이 이길 생각이 없는 상대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것 자체가 쇼다”
재벌과 정부는 종종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비유된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재벌은 성장의 중심에 있었다. 정부로서는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속성장이 필요했고, 재벌이 그 역할을 맡았다. 대신 재벌은 정부로부터 정책적 도움을 받았다. 재벌과 정부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재벌과 정치권도 비슷한 관계에 있다. 재벌은 정치권을 향해 끝없는 구애를 했고, 정치권은 재벌과 밀애를 즐겼다. 서로의 이해가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윽박지를 때도 없진 않았다. 재벌이 ‘돈’으로 권력을 사려 했다면, 정치권은 ‘권력’으로 돈을 구했다. 비겁한 타협을 한 것이다. 재벌로서는 남는 거래고, 정치권으로선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재벌은 ‘멀리’, 정치권은 ‘짧게’ 봤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권력은 유한(有限)하기에.
‘2002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드러난 정치권과 재벌의 추악한 거래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정치권은 국정감사 때면 의례적으로 재벌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지만 반드시 출석시킬 생각이 없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까놓고 말하면 반대급부를 노린 겁주기였다.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둘 사이가 험악해졌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감세철회 및 반값 등록금 문제를 놓고 정치권을 비난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말의 수위를 볼 때 작심한 듯하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과 이희범 경총 회장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여야 정치권이 발끈했다. 허 회장을 국회 공청회에 불러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허 회장은 국회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출석하지 않았다. 민간인의 국회 공청회 출석의무는 없다. 필요하다면 청문회를 열어라.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허 회장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포퓰리즘’ ‘즉흥적 정책’ 등 일부 발언들은 분명 도가 넘쳤다. 감세철회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대기업 이해집단의 수장으로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학 등록금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재벌정책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만일 정치권의 포퓰리즘의 한 예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비판하고 싶었다면 민간 연구소를 통해서 하면 어땠을까? 솔직히 대기업이 그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해 왔는지, 혜택만 바라고 투자는 기피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재벌이 정부를 지배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치권도 잘한 건 없다. 전경련 회장의 발언을 놓고 ‘오만방자’ ‘탐욕’ ‘손을 봐야’ ‘북한을 능가하는 세습지배구조’ 등의 언사는 다분히 감정적이다. 또 선진국 진입 실패의 책임을 재벌에 돌렸지만 그 책임의 경중을 따지면 정치권은 ‘주범’으로 지목될 만하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면서도 밥 먹듯 법을 위반하지 않았던가. 재벌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정치권은 재벌을 비난하기에 앞서 제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돌아봤으면 한다. 남에 대한 비판은 자신에 대한 반성이 전제될 때 진정성을 얻는다.
집단의 이해에 따라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공방이 매우 비이성적, 감정적으로 흐른다면 합의점 도출은 멀어지고, 싸움이 된다. 재벌 총수나 국회의원은 공인이다. 그들의 언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인격의 요체는 ‘언격(言格)’이다. 특히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다. 그만큼 자리가 무겁고 중요하다.
돈과 권력은 나눌 수 없다고 한다.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라는 말도 있다. 권력은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그런 속성을 가진 돈과 권력이 충돌했을 때 이성은 존재하기 힘들다. 양보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길까? 내 생각엔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다. 양측 모두 상대와 완전히 등을 돌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치권, 특히 여당 내에서 제기되는 재벌에 대한 불만도 어찌 보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고도의 정략처럼 보인다. 굳이 이길 생각이 없는 상대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것 자체가 쇼다. 정치권과 재벌은 ‘쇼’를 당장 집어치워라.
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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