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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박경신] 학생인권조례와 줄세우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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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하다. ‘조례’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학생인권’이라는 말까지 더해지니 더 생소하다. 조례는 법령 중의 하나로 지방자치단체의 입법기구가 만드는 법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일종의 인권법이라고 보면 된다. 왜 ‘학생’인권법인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것처럼 학생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교육수행자에 의해 많은 인권침해가 강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도소, 병원 등 특별관계 속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다른 장소들도 많지만, 학교에서는 일시적인 강요의 요소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교육에 불필요한 강요까지 받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인권침해가 ‘사랑의 매’로 미화되는 체벌이다. 물론 정당한 폭력도 있다. 억지로 수갑을 채우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재산을 빼앗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도 폭력이다. 하지만 이 폭력은 모두 법 절차에 의해 행사되며 간접 체벌이든 직접 체벌이든 ‘물리적인’ 고통을 가하는 형태로 행사되지는 않는다. 학교 외의 세상에서 ‘맞을 짓’은 없다.

석차에 올인하는 무한경쟁

우리의 교사들은 대부분 체벌의 부당성을 이미 잘 알고 있어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체벌에서 자유롭다. 체벌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매우 예외적인 교사에 의해서만 행사된다. 더 많은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인권침해는 줄세우기 교육이다. 매년 200명 넘는 중·고교생이 자살하고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한 아이들의 30% 이상은 성적 고민이 그 원인이다.

그런데 이들이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성적은 실제 학력이 아니라 ‘등수’이기 때문이다. 급우들이 모두 똑같이 죽어라고 공부하고 있는데 왜 자신의 성적만 오르겠는가? 수업시간 외 모든 시간을 공부에 올인하는 무한경쟁이 어린 나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왜 우리는 학생의 등짝에 1급, 2급이라고 찍어서 내보내거나(고등학교) 아예 학내 석차를 명시해서 내보내고 있는가(중학교)? 이렇게 낙인이 찍힌 학생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물론 평준화되어 강제 배정되는 중·고교에 진학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대학교, 국제중, 특목고, 마이스터교, 자사고 등에 갈 때는 학내 석차가 불리한 지위가 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1급이나 석차가 좋은 학생들은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겠지만 이를 위해 수많은 다른 학생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평가받아야지 타인의 능력(자신보다 잘한 학생들의 숫자)에 의해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물론 이렇게 하면 상급학교들이 ‘좋은 학생’을 선별해내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수능으로 측정할 수 있는 수월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몇몇 명문대 등 상급학교들이 ‘좋은 학생’들을 독점하는 일을 수많은 학생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도와줘야 하는가.

학생 자신의 능력 평가해야

그렇지 않으면 본고사가 부활될 것이고, 중·고교생들의 본고사 준비를 위한 무한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기업, 전문직 외에는 품위 있는 직장이란 찾아볼 수 없는 노동시장이 변화하지 않는 한, 또는 그 전 단계에서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전망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 어려운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조례는 우선 학생이 다른 학생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해 평가받을 권리를 천명해야 한다. 적어도 공교육이 명문대들에 굽신거리느라 학생들을 살인적인 무한경쟁에 내모는 것은 막아놓고 대응책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박경신 고려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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