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디지털 세상에 만나는 책

월간지를 만들면서 드는 생각은 한 달이 하루 같다는 것이다. 송년호를 만들면서 올해도 열두 번을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드는 신간들을 품으며 책은 참으로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다.

올해 발행된 신간의 책 제목을 분석해 보았는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나’와 ‘내’였다. 점차 개인화되고 파편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상을 날카롭게 보여주었고, 또 하나 재밌는 발견은 개인화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함인지 ‘우리’라는 책 제목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사랑’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고, ‘행복’이라는 단어도 바짝 뒤를 이었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 아이패드 예약판매 5만 대가 팔렸다는 보도를 보면서 차가운 사물이 사람들의 심장을 녹일 만한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며, 정보를 저장하고 바로 꺼내볼 수 있다는 편리성도 충분한 매력이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자기기에 익숙해져 있다. 휴대폰이 내 몸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금단현상이 일어나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사람의 살보다 부드러운 것이 없다는데 우리는 사람과의 접촉보다는 기계와의 접촉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

출판계 이슈 중 하나도 전자책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콘텐츠를 다운받아 책을 본다고 한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보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나는 아직 전자책이 익숙하지 않아 종이책을 고집한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더 좋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바꾸려면 좋은 스승을 만나라. 아니면 좋은 책을 만나라. 그러면 당신의 인생이 바뀔 것이다”라고 했다.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좋은 책을 만나 내 삶이 윤택해진다면 디지털 세상도 충분히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자매체가 발달함에 따라서 우리 삶은 빠르고 쉬운 길을 제공해 주었지만, 깊은 사유와 사고를 할 수 있는 가치 있고 풍요로운 삶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제이다. 청소년기의 독서는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고 말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는 은어, 속어, 줄임말 등을 듣고 있으면 한국어의 상실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국어는 그 나라의 정신인데 우리 문화와 정신이 피폐해지는 증상이 나오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올해 발행된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디지털 세상인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랑받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어느 가수가 부르는 노래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법인데, 사람과 주고받는 따뜻한 사랑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으리라.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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