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값 20년째 50원… 환불 ‘퇴짜’도 빈번

#장면1. 대학생 김모씨는 집에 쌓아둔 맥주 소주 음료 등 빈 병 40여개를 반환하고 보증금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동네를 헤매야 했다. 빈 병을 카트에 싣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찾아가 환불을 요구하면 병값을 돌려주지 않거나 규정보다 적은 금액을 주려고 했다. 맥주병은 50원, 소주병은 40원을 돌려받게 돼 있지만 소매점은 보관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빈 병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면2. 독일 하이델베르크 시가지에서 한 할머니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며 빈 맥주병이나 맥주·음료 캔을 수거한다. 이 할머니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은퇴한 뒤에 소일거리로 하는데 하루에 많게는 40유로(약 6만4000원)를 번다”고 말했다. 독일의 공공장소에서는 빈 용기를 수거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캔맥주가 편의점에서 2유로(3200원)인데, 회수보증금이 30유로센트(약 480원)다. 330㎖ 맥주병은 9유로센트, 페트병은 15유로센트다.

소비자가 술병이나 음료병을 소매점에 갖다 주면 받는 빈 병 보증금이 사실상 2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빈병 회수 인센티브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녹색성장의 구호가 범정부적으로 우렁차게 울리는 만큼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자원 재활용 정책의 여지는 크지만 관계 당국의 소극적 태도로 기회를 놓치고 있다.

한국용기순환협회에 따르면 맥주병의 주종인 640㎖(500㎖ 이상) 병의 반환보증금은 1990년 50원으로 인상된 후 지금까지 그대로다. 소주 360㎖(500㎖미만)도 94년 35원에서 40원으로 인상된 게 마지막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국가들의 빈 병 보증금은 평균 194.4원으로 우리나라 맥주병의 거의 4배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 병 재사용은 7회 정도에 그치고 있다. 용기순환협회에 따르면 독일 40회, 핀란드 30회, 일본은 24회에 이른다. 환경부는 재사용 횟수를 20회로만 늘려도 연간 600억원가량의 경제·환경적 편익을 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약 400만대의 승용차가 서울~부산을 왕복할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도 거둔다.

한국주류연구원은 지난해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적정 빈 용기 보증금에 대한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주 76원, 맥주 109원으로 나타났다”며 보증금 인상을 촉구했다.

빈병 재사용을 활성화하고 환경교육도 꾀하기 위해 아파트 입구나 대형마트 등에 빈 용기 무인회수기를 설치토록 한 의원입법안은 1년 이상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지난해 9월 15일 발의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소비자가 빈 병을 반환하면 은행 등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보증금 회수권이 출력되는 ‘역(逆)벤딩머신(RVM)’의 설치에 반환되지 않은 빈 용기 보증금 잔액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된 뒤 아직 상정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31일 “반환보증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웬만큼 올려서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자원순환국장을 지낸 환경부 고위 관리는 “물가에 부담을 준다는 경제부처의 반론이 나올까봐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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