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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김찬규] 중·일간 어선 나포사건의 파장

[시사풍향계-김찬규] 중·일간 어선 나포사건의 파장 기사의 사진

지난 9월 7일 오전 10시께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구바지마(久馬島) 영해 내에서 조업하던 중국 저인망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경고를 받고 달아나면서 순시선을 들이받았다. 급보에 접한 다른 순시선 2척이 현장에 달려와 추적에 참가하자 어선은 다시 그중 한 척을 들이받고 도주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나포됐다.

센카쿠열도는 중·일 간에 영유권 분쟁이 있는 곳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본의 실효적 지배 하에 있다. 따라서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일본 영해 내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 어선이 정선명령을 무시하고 달아나면서 순시선을 들이받고 추적에 참가한 또 하나의 순시선을 들이받아 피해를 입힌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일본은 나포된 어선의 선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한·중 서해안 경계선 분쟁도

이에 대해 중국은 전방위적 압박으로 대응했다. 중국은 주중 일본대사를 네 번 호출했는데 거기에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이 12일 새벽 일본대사를 불러 중국 어민과 어선의 즉각적 송환을 요구한 것이 포함된다. 주재국에서 대사를 꼭두새벽에 호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며 이것은 사건에 대한 중국 측 정서를 극명하게 표출한 것이었다. 21일 군사시설을 무단 촬영했다는 이유로 일본인 4명이 구속되고 23일에는 희토류(稀土類)의 대일 수출이 잠정 중단되는 등 대일 압박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자 일본은 마침내 굴복하고 선장을 석방했다.

이상 본 것이 중·일 간 어선나포 사건의 전말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어떠한 것일까. 지금 한·중 간에는 이어도 문제와 서해 및 동중국해 해양경계 문제에 관한 잠복된 분쟁이 있다. 우리가 이어도에 과학기지를 건설하자 중국이 즉각 이의제기를 했고 1970년 1월 1일 우리가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그리고 같은 해 5월 30일 동 시행령을 제정해 한반도 주변에 7개 해저광구를 설정하자 중국은 역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광구 설정 후, 군산 부근 제2광구에서 미국 석유회사 걸프가 탐사에 나서자 경무장한 중국 어선들이 몰려와 적어도 4회에 걸쳐 전자파 탐사용 전선을 절단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1973년 2월에서 6월까지 걸프사는 서해 우리 쪽의 한곳에 굴착용 장치 ‘글로머 4호’를 보내 시추를 진행했다. 국내 언론에 석유부존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마급 중국 포함(砲艦) 여러 척이 시추장치에서 1마일 미만 되는 곳까지 접근해 3일 동안 머물면서 위협적 자세를 취한 일도 있다.

이것은 정녕 무력에 의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1970년 우리나라가 서해에 해저광구를 정함에 있어 중국의 시비를 우려해 중간선보다 훨씬 우리 쪽에 해양경계선을 설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 같은 태도를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적 설명은 없었지만 서해 등심선(等深線)이 서해의 3분의 2를 중국 쪽에, 3분의 1을 한국 쪽에 있게 하는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음을 이유로 중국이 서해 해저의 3분의 2를 차지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속셈일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패권주의화 하는 중국 경계를

국제해양법상 해양경계 획정 기준에 이 같은 것은 없다. 동중국해 중간선의 훨씬 우리 쪽에 있는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자 중국은 이의를 제기하면서 양국 간에 합의된 중간선이 없는데 어떻게 중간선을 들먹일 수 있는가 하고 되묻는 고자세를 취했다.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결국 “무릇 하늘 아래 있는 것치고 중국 것이 아닌 게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는 그들의 전통적 사고방식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중국은 지금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세계 제2의 대국이 되었다. 그런 중국이 대국으로서의 소임보다는 패권주의로 흐르는 조짐이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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