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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김성영] ‘동족능해’의 지원과 北 진정성

[시사풍향계-김성영] ‘동족능해’의 지원과 北 진정성 기사의 사진

“지상의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 불과 반세기 만에 국제 기아 해결에 참여하는 원조국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광화문 네거리의 어느 고층빌딩 엘리베이터 TV에서 본 글귀다. 올 11월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의 홍보자막을 대한 필자는 자부심과 함께 착잡한 심정으로 그 글귀를 되뇌었다. 그랬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는 일본에 주권을 잃은 지 한 세대 넘게 압박과 설움의 세월을 보내다가 민족자결의 기운으로 해방을 맞았지만 미국 등 여러 선진국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지상의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전후 신생독립국가 중 불과 반세기 만에 민주입국과 경제강국을 동시에 일궈낸 유일의 모델 국가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난해 11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로 가입함으로써 명실공히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국제적인 위상을 새롭게 했다.

반쪽짜리 금화 같은 축복

이처럼 어엿한 기부국으로서 국부가 인정된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지만, 생존 문제로 허덕이는 북한 동족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이 반쪽짜리 금화 같아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DAC 가입 1년이 돼가는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나라가 기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난한 나라들을 얼마나 돕고 있는지 몰라도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외면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자랑스러울 것이 못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천안함 피침 이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동족에 대한 인도주의적 온정조차 식어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 원칙이 아니더라도 사안의 심각성은 북의 사과가 전제되지 않는 한 인도적 차원의 시혜마저 자칫 북한 정권을 더욱 방자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현재 정부가 견지하는 대북정책이 북의 도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에 기인한 것임을 충분히 이해하며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굶주리고 있는 동족을 봐서라도 대북정책에 유연성을 가졌으면 한다. 정부가 자신 있게 관용책을 편다면 국민들은 그것을 정책의 일관성 결여로 보지 않을 것이고 북도 오판하지 못할 것이다. 엊그제 정부가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은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북은 최근 압록강 범람으로 신의주 일대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극심할 뿐더러 연례행사 같은 만성적인 흉년으로 동족의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추석과 함께 곧 매서운 추위가 닥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의 원칙에 얽매여 시혜의 기회를 놓친다면 국제사회는 우리의 원칙론을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 최근 북한 당국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시급히 쌀과 수해복구 장비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오지 않았는가. 아울러 이산가족상봉을 재개하자며 유화 제스처를 쓰고 있다. 이런 일련의 메시지는 그들의 과오에 대한 간접적인 사과의 표현일 수도 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최근 어느 TV가 방영한 ‘한국의 유산’ 한 대목을 상기한다. 조선 후기 어느 낙안군수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곳간 한 가운데 구휼미(救恤米)를 마련해 놓고 ‘타인능해(他人能解)’의 기회를 베풀었다는 감동스토리 말이다. “누구든 문을 열어 쌀을 가져가도 좋소.” 우리 정부는 지구촌의 먼 이웃을 돕는 것 못잖게 바로 눈앞에서 굶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인도적인 ‘동족능해(同族能解)’의 마음으로 곡간을 열기 바란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북한 당국은 천안함 폭침에 대해 솔직히 사과하고 남북 간 화해와 신뢰회복에 진정성을 보여 주기 바란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거저 받아 오늘을 이룬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김성영 백석대 석좌교수·국제정책연구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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