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여행의 목적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제목 그대로 여행의 기술(art)을 풀어쓴 에세이다. 보통은 여행지를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엮어냄으로써 여행의 묘미를 자아냈다. 그는 별난 여행 에세이도 한 편 소개했는데, 자신의 방을 여행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진정 자신이 기거하는 방안을 탐험한 이야기로 책을 구성했다. 방안을 살피는 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이지만, 이렇듯 여행은 저마다 다른가보다.

언제부턴가 나의 여행은 수동적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게 취미였는데, 철저히 동반자에게 의존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의 목적은 일탈 내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여행의 기술은 철저한 여행계획을 요하는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그 책을 읽은 후로 여행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요즘 나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책 한 권을 가지고,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까운 곳을 짧게 여행하곤 한다.

지난 주말 친구와 함께 친구가 자란 곳 속초를 다녀왔다. 친구가 그 곳 지리와 맛집에 정통하기 때문에 철저히 친구에게 의존했다. 친구만 따라가면 되니까 편하기는 하지만, 무뇌인간이 된 느낌이다. 게다가 친구는 맛있는 건 먹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일정을 먹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잘 먹고 푹 쉬고 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건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진 나를 위한 배려였다.

목적대로 우리는 속초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음식을 위주로 정말 많이도 먹었다. 나는 친구의 배려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목적 달성에 성공한 나머지 여행에서 돌아오니 몸무게가 2㎏ 늘었다. 이것으로 다이어트 계획은 실패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식탐여행만 한 것은 아니다.

별미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여행의 묘미는 친구의 이야기에 있었다. 친구는 내게 속초 곳곳에 서린 자신의 추억과 사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로써 나는 친구의 기억과 교감하고 동화되곤 한다. 이동하는 중간 중간 친구는 친구의 부모님, 부모님의 지인들에게 인사하고 근황을 알리곤 한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친구의 그분들에게 인사하고, 그분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고향에 내려온 친자식과 같은 친구가 반가운 나머지 어르신들은 목소리가 한층 격앙되곤 한다.

그러면서도 친구는 급격하게 바뀐 길과 동네 풍경에 당황하고 길을 헤매기도 한다. 여행을 간 게 아니라 가까운 친구 집을 잠시 들렀다 온 것처럼 여행의 후유증이 없다. 친구에 의하면 ‘참 바람직한’ 시간을 보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것도 모자라 살을 잔뜩 찌워서 돌아왔다. 며칠 사이 여행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방안을 탐험한 여행자처럼 머릿속을 탐험해야 기억이 선명해질 듯하다. 여행에 무슨 목적이 있겠냐 싶지만 떠나고 잊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

김연숙 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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