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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정미경] 영원히 기억하리, 젊은 그대들이여

[시사풍향계-정미경] 영원히 기억하리, 젊은 그대들이여 기사의 사진

더없이 맑고 화창한 봄날, 우리 아이들이 돌아왔다.

두 동강 난 채로 가라앉았던 배의 함미가 검푸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참담한 마음이었다. 통곡과 오열은 가족들의 몫이었으나 국민 모두 숨죽인 눈물과 슬픔을 삼켰다. 이십여일 같이 가슴 졸이고 애통해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적을 기다리는 동안 천안함의 수병들은 온 국민의 아들들이 되어 있었다. 황망한 중에도 곧 구출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기엔 그들은 너무도 눈부시게 푸르렀으므로.

그러나 너무 긴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이제 돌아왔으나 그들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고 그들의 입술은 엄마라고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한다. 772함 수병들은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는, 간절하고 애타는 마지막 명령을 그들은 절반만 수행한 것이다.

“돌아와 주어 고맙구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외면하고 싶었지만 나는 천안함이 인양되는 장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아이들이 마침내 돌아오는구나. 캄캄한 밤바다 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우리였으니, 이제 귀환하는 저들을 두 눈 부릅뜨고 맞아주어야 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구해주지 못해 마음이 무너진다고 몇 번이라도 말해주어야 했다. 차가운 바닷물에 담겨 푸릇해진 몸으로, 기름 묻은 몸으로라도 돌아온 것이 고마웠다. 나머지 여덟 명의 육신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으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산화한 그들의 영혼도 저 배를 타고 동료들과 같이 돌아왔음을.

태극기에 감싸여 육지에 오르는 그들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것 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본 엄마들은 다 안다. 저들이 늠름한 군인아저씨이기 이전에 떡볶이를 좋아하는 철부지이며 밤마다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내 새끼들이란 것을. 예리한 눈초리로 경계를 서지만 그 뺨에는 여전히 어린 솜털이 보소소한 것을.

조국을 위한 신성한 의무 앞에서 그들은 잔꾀를 부려 빠져나가지 않았다. 어떤 핑계도 대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국가의 부름에 달려 나왔다. 험한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힘든 시간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었다. 성실하고 아름다운 젊음들이었다.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 부모님께 드린 효자였고, 태어난 지 백일도 되지 않은 딸의 아빠였으며 믿음직한 형, 오빠였다. 이들을 어찌 보낸단 말인가.

일어설 힘도 없이 엎디어 울던 김선호 상병의 어머니 김미영씨는 그 몸을 일으켜 잡채 100인분을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어미들은 그 마음을 알기에 또 울었다. 사진 속 선호의 앳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마 생전의 선호는 엄마표 잡채를 무척 좋아했을 것이다.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손수 만든 잡채를 먹인 그 힘으로 엄마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몇 번이나 대승적 결단을 내려주었다. 차마 놓을 수 없는 희망 앞에서도 더 이상의 희생을 막겠다며 수색 중지를 요청했다. 가장 큰 것을 잃고 가장 큰 고통을 당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큰 마음이었다. 그 사랑 앞에 깊이 고개 숙인다.

“산하의 봄꽃을 바치리니”

완전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뢰든, 기뢰든 이 엄청난 비극의 씨앗은 분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예수가 그러했듯 죄 없는 자, 순결한 자가 분단의 제단에 먼저 희생양으로 놓여졌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일 것이다.

젊은 영혼들아. 그대들이 온 몸으로 사랑했던 이 산하에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났구나. 한 열흘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이토록 쓸쓸하게 보인 적은 없으니 우리의 마음은 이 꽃들 모두를 그대들 영전에 바치고도 부족하구나. 조국은 그대들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리니 아픔과 고통은 모두 백령도 바다 밑에 묻고, 웃고 사랑하고 행복했던 기억만을 품고 천국에서 영면하시라. 평안히, 부디 평안히.

정미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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