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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박문일] 아기 많이 낳으라고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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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자녀양육 부담을 줄이고 일과 가정의 양 기반을 확대하여 인구를 늘리고자 하는 등 실로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임신부가 실제로 아기를 낳는 출산환경 개선에 대한 정책은 한 줄도 없다. 이 나라 관리들은 아마도 우리나라 임신부들이 모두 출산은 다른 나라에서 하고 아기만 데려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출산환경을 한번 되돌아보자. ‘출산도 국가를 위한 기여’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출산에 대한 기여는 임신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기여한다. 출산에는 밤낮이 따로 없다. 휴일과 공휴일에도 예외가 없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24시간 항시 뛰어갈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치 언제라도 화재 현장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소방관들과 같다.

산부인과 지원 너무 소홀해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준비된 시스템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참 이상한 나라다. 소방관이 화재가 나지 않으면 월급을 받지 않는가. 소방관의 월급은 화재를 예방하고 언제라도 화재가 나면 현장으로 뛰어갈 수 있는 준비에 대한 수고의 인센티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묵묵히 출산 현장에서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안전하게 태어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밤낮 대기하며 모자보건을 위해 소방수 역할을 해온 의사들의 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있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을 건강보험 제도의 틀에 묶어 수가를 관리해온 수십년간의 족쇄도 이젠 풀 때가 되지 않았는가. 출산 현장에 대한 무대책은 저출산 정책의 또다른 그늘을 만들고 있다.

분만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원의 수는 지속 감소해 이제는 개원의의 반 이상이 출산을 하지 않고 있다. 대구 지역은 무려 86%가 분만을 하지 않는다. 저출산 시대 도래전 부터 개원 현장에서의 분만실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도 인정하는 지극히도 낮은 분만수가와 함께 출산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의료 분쟁이 그 원인이다. 올해 전공의 모집에서도 산부인과는 정원의 59%밖에 못 채웠다. 이러다간 곧 산부인과 의사들을 수입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찍이 임신과 출산을 건강보험에서 제외했다. 그 대신 모든 임산부에게 500만원이 넘는 출산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작 20만원씩을 지급한다. 일본은 또 제왕절개술률이 우리나라의 2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의료분쟁조정법조차 없어 분쟁이 생기면 의사와 임산부 간의 고단한 싸움이 시작되며 정부는 팔짱 끼고 관망만 한다. 따라서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의사들과 달리 그들은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 임산부들의 만족도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원하는 진료 환경과 출산 환경을 500만원 내외에서 본인들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밀착형 대책 절실하다

우리나라 관리들에게 출산 환경을 한번 견학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얼마나 긴박한 환경에서 출산이 이뤄지는지, 왜 제왕절개술이 그렇게 많은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아기들이 태어나는지, 출산 현장에서 산부들의 불만은 무엇인지를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한번이라도 출산 현장을 보고난 뒤라면 실질적이고도 실용적인 정책적 지원 방안들이 떠오를 것이다.

품위 있는 출산 현장에서 더욱 건강한 우리들의 아이들이 태어나며 다시 한번 분만실을 찾는 임산부들도 늘어나 저출산 현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출산 현장을 직접 돌아보라. 소방수들의 사기를 높여주어야 불을 더 잘 끌 수 있고, 나아가 더욱 효율적인 화재 예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화재 현장에서 느껴야 하는 것처럼.

박문일(한국모자보건학회 회장, 한양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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