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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노동일] 재판의 상식과 법리 사이

[시사풍향계-노동일] 재판의 상식과 법리 사이 기사의 사진

오제이 심슨. 미국 이야기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이름이다. 처음 심슨이 자신의 전처 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그가 범인임은 확실(?)해 보였다. 생중계된 백주의 추적 장면과 피 묻은 장갑 등 증거도 불리한 것 투성이였다. 하지만 결과는 무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세상 사람들을 경악케 한 재판이었다. 미국판 유전무죄요, 드림팀 변호인단의 승리라고 설명해 보아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재판 결과에 가장 놀란 것은 아마 심슨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재판은 증거끼리 다투는 곳

더 이상한 사실은 형사재판 후 피살자 가족이 심슨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형사소송에서는 무죄인 심슨이 민사소송에선 피살자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지만 재판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증거가 피고인에게 아무리 불리해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전제다. 반면 원고와 피고 중 조금이라도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민사소송이다. 그렇지만 같은 사건의 결론이 형사와 민사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건전한 상식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는 격언과 ‘법은 때로 상식을 배반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PD수첩 관련 재판도 마찬가지다. 이미 고등법원에서 일부 허위·과장 보도를 인정하고 정정보도 판결을 내린 사안인데 무죄라니! 이번 재판은 ‘허위·과장 보도’ 자체가 아니라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에 관한 것이라는 법리를 감안해야만 이해가 가능한 것이기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민사상 정정보도는 되지만 형사상 처벌은 안 되는, 상식과 법리가 때로 다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최근 비판 대상이 된 일련의 판결들 모두가 상식과 법리가 달라야 하는 사안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전부를 ‘단독법관의 편향적 판결’로 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상식과 배치되는 판결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이어야 한다. 법리적으로 엄밀하게 따져야 하는 사안이야 상식에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안마저 일반의 법감정과 너무 동떨어진 결론이 계속 나온다면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될 것이다.

당사자도 시인한 폭력행위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강기갑 의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너무 엄밀(?)한 법리를 구상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진 격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높은 항소율과 상고율로 법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승복하지 않는 문화도 문제지만 상식과 배치된 판결들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법원이 아무리 대책 마련에 나선다 해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이어진다면 어떤 묘책도 효력이 없을 것이다.

‘PD 수첩’ 진실 승리 아니다

PD첩으로 돌아가 보자. 그 사건에서 상식이 통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오제이 심슨의 무죄는 엄격히 말해 형사재판상 유죄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재판도 진실의 승리라고 말하기엔 미진한 구석이 있다. “세세한 점에서는 다소 과장이 있지만 허위사실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이고, PD수첩 측 변호사 역시 “보도가 상당 부분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비록 일부라 해도 과장된 부분,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언론 보도에서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는 치명적인 것일 수 있다. 정의와 진실의 승리라고 환호하기 전, 그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과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이 보수와 진보의 증오로 몸살을 앓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런 것이야말로 재판에서 반영하지 못하는 진짜 상식이 아닐까.

노동일 경희대 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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