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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손기웅] 1989 베를린 드라마 감상법

[시사풍향계-손기웅] 1989 베를린 드라마 감상법 기사의 사진

20년 전 오늘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의 발생이었지만 사실 베를린 장벽은 이미 벌써 동독 주민들의 마음속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동독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두고 일관되게 추진되었던 서독의 정책에 의해 그들은 서독이 훨씬 더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국제적 환경 변화에 의해 한 순간의 기회가 주어지자 주저 없이 자유로의 행진을 실행하였다.

서독은 동독의 주민들이 언젠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할, 잠시 떨어져 있는 독일 민족임을 확고하게 밝혔다. 또한 탈주든 이주든 그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서독 체제에 살고자 원한다면 즉시 서독 국민으로 받아들여 서독 주민들과 똑 같은 권리와 의무를 누리도록 하였다. 헌법 정신과 인도주의, 민족주의와 동포애에 입각하여 서독 체제를 원하는 모든 동독인을 받아들여 정착을 지원한다는 1950년의 ‘긴급수용법’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서독 정부가 심어준 '희망의 싹'

서독의 ‘신동방정책’ 역시 동독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주민 간에 커져가는 이질감을 줄이는 대신 독일민족공동체에의 연대감을 키우고자 마련되었다. 접촉과 교류 협력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동독 체제와 동서독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접근을 통한 변화’ 및 ‘작은 걸음의 정책’이 추진되었다. 교류 협력을 통해 동독에 물질적 대가를 지불하되 그 반대급부로 상호 방문, 서신 교환 등 동독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 원칙을 관철하였다. 이를 통해 동독 주민들이 서독 체제를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독 주민들의 삶에 대한 적극적 관심의 표현은 동독에 투옥되어 있는 정치범들을 서독이 돈을 지불하고 데려와 자유로운 서독의 국민으로 살게 하는 정치범 석방 거래, 이른바 ‘프라이카우프’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올바른 것을 주장하다 칭찬되어야 할 이들이 범죄인이 되어 받는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정통성을 가진 국가의 책무로 받아들였다.

서독의 이러한 노력들은 동독 주민들의 마음속에 서독 체제에 대한 희망의 싹을 심어주었고, 결단의 시기를 재촉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의 문이 열렸다. 헝가리가 1989년 여름에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자 동독 주민들은 즉시 행동을 개시하였다. 헝가리 소재 서독 대사관에 진입하여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의 이주를 절규한 것이다.

서독은 동독 주민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즉시 헝가리와 협상하여 헝가리가 사회주의 형제국인 동독의 요구를 물리치고 이들의 자유여행을 허용토록 한 것이다. 길이 열리자 수만명의 동독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도 동독인들이 밀어닥쳤다. 실개천으로 시작된 동독 내에서의 개혁과 자유를 위한 흐름이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로 전변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동독 주민들이 몸으로 밀어 무너뜨린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하면서도 형해화된 다음의 사실을 말해준다. 평화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결단하여 몸을 움직일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며, 원한다면 그들을 대한민국은 어디에서든, 누구나, 얼마든지, 언제든지 국민으로서 받아들인다. 대한민국은 언젠가 함께할 북한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그리고 그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다.

북한 주민 삶에 관심 가져야

대한민국은 이러한 원칙을 다시 확고하고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이란 희망의 싹을 심어야 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북한 주민들을 전부 즉시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교류 협력도 필요하다. 이산가족의 재결합, 국군포로와 납북자들 생환을 국가적 책무로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면 북한 주민들은 언젠가 화답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을 스스로 부순 동독 주민들처럼.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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