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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
날짜 2022/03/24 작성자 홍석동

초등교원으로 다음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신앙적으로 체험한 내용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첫째 문제아 지도

새로 부임한 학교는 성남시에서 가장 달동네라고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학교였다.

부임하자 학교 내규에 의해서 새로 부임한 교사는 고학년을 맡는 규정에 의해서 5학년을 맡게 되었고 교장선생님이 학부형들의 생활수준과 지역적 특성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을 해주시면서 가정환경이 어렵고 부모들 거의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며, 노동들을 하여 생계를 꾸려 나간다고 하였다.

또 아동들이 부모가 이혼하여 편부 편모의 아이가 있는 경우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고 하셨다.

맡고 있는 학급에 아동이 1명 출석 하지 않아 그 다음날 시간을 내어 가보았더니 마침 아동 아버지가 계셔서 오영석에 대해 자세하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영석 어머니는 어렸을 때 이혼을 하여 없고 형제는 위로는 누나 둘이 있고 서울에 있는 공장에 다니고 바로 위형은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는 것과 오영석이 막내이고 현재 오영석은 집을 나가 가출한지 거의 10일 정도 되었고 이번뿐 만 아니라 전에도 자주 집을 나가 가출을 하여 남의 집 물건을 훔쳐 경찰에게 붙들려 파출소에서 데려오곤 한다고 하면서 내 자식이지만 내버린 자식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시면서 아예 관심 밖이었다.

때려 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다고 하신다.

그러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동을 봐야 뭐라고 얘기를 하든지 지도를 할 수 있는데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가끔 집을 방문하거나 아동을 통하여 집을 가보아 확인하였지만 집에 오영석은 없었다.

주위에서 다른 학급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일을 보았지만 내가 맡고 있는 학급에서는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급 아동을 통하여 옆 반의 아동을 통하여 오영석 어제 어디서 다니는 것을 보았다니 하는 등 이야기를 들었지만 좀처럼 만 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거의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오영석이 제 발로 학교를 왔다.

너무나 반갑기도 하고 고마울 정도였다.

신학기 담임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앞으로 결석을 하지 말고 네가 학교생활이나 가정에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자세하게 묻기도 하고 하였지만 성격이 그런지 잘 대답도 안하고 눈치를 보며 경계하는 낯빛만 볼 수 있었다.

며칠 동안은 학교를 잘 나왔다.

걱정되는 일은 오영석을 통하여 나쁜 짓을 하는 그룹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개 5학년 정도 되면 모험심이 강하고 또래 집단과 잘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시기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한 것은 오영석이 자주 결석을 해서 그런지 친구가 별로 없고 반 아동에게 주의를 주어서 그런지 오영석과 어울리는 아동은 볼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 결석을 시작하여서 약간 불안한 생각이 들어 학급 아이들을 시켜서 알아보거나 교과 담당 시간을 이용해서 집을 가보았지만 집에도 없었다.

며칠 후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면서 교감 선생님께서 빨리 파출소에 가보라고 하면서 오영석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내용을 알아보니 동네에서 자전거를 훔쳐 타다 주인이 신고를 하여서 파출소로 붙잡혀 왔다고 한다.

파출소에서 데려와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도록 여러 가지 권면의 말도 하면서 여러 가지 다짐도 받고 다시는 학교를 결석하지 않고 물건을 훔치는 일을 안 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내었다.

그날 이후 며칠 후에는 교육청에서 새로 발령 받은 교사와 타 지역에서 새로 온 교사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맞벌이 부부가 많다고 하시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우리 지역에서 부부교사는 재벌이라고 하시기도 하셨다.

그만큼 빈곤한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또 이 지역은 중 고 등 학교를 다니다 퇴학을 맞았거나 여러 가지 가정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이 범죄를 일으켜 어느 지역보다 많다고 하신다.

그만큼 교육하기가 어려운 지역이라고 하시면서 어린이를 사랑으로 감싸 줄 것을 당부하였다.

문제아가 보통 아동처럼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런 문제아를 담임을 맡게 되었을까 하면서 자조 섞인 원망도 해보았다.

그러던 중 4월 중순경 어느 날 갑자기 전임지에서 같이 근무하시던 선생님께서 연락이 왔다.

먼저 같이 근무하시던 암으로 투병하시던 여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무슨 일인가? 지금까지 그 학교 신우 회 선생님들이 정성어린 기도를 하고 코흘리개들의 저금통 까지 뜯어 성금을 모아 어서 쾌유하기를 빌었는데 돌아가시다니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 왔다.

죽음 앞에는 어쩔 수가 없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20여년의 교직 생활에서 아동들이 다치거나 물건을 훔쳐 약간의 문제로 고통을 당해 보았지만 또 이 번 처 럼 주위에서 동료 교사들이 맡고 있는 아동으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고 속상해 하는 것을 보아왔지만 홍길동 선생이 맡고 있는 아동은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 하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방관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정말 처음 겪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후 3일 동안 학교를 잘 나오다 또 결석을 하여 알아보니 어제 집을 또 가출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날 오후 교감 선생님께서 파출소에서 데려왔다고 하시면서 어느 가구 공장의 물건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훔치다가 가계 주인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오영석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학급의 어린이들과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

맡고 있는 학급이 정에 굶주린 정을 붙일 데가 없는 방황하는 아동의 안식처가 되도록 마음먹었다.

수시로 결석을 할 때 마다 교과 전담 시간 및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직접 방문하거나 학급 친구를 통해서 수시로 데려오기도 하는 등 우선 결석을 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였다.

학교를 나오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학교를 나오면 불량배들과 어울릴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영석이 학교를 안 오는 원인 분석을 하였다.

우선 혼자 외톨이로 지내고 친구가 없었다.

학급 내에 친한 친구가 없는데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학급 어린이들과 인간관계가 잘 형성되도록 위해서는 일부러 상냥한 예쁜 여자 어린이들 앉히고 오영석에게 잘 해주도록 신신 당부하였다.

수업시간에 둘이 장난치는 것도 모른 척하고 아무든 옆에 짝을 통해 학교생활이 재미가 붙도록 노력하였다.

학급에서 고립아나 외톨이 아동들은 수업시간에 장난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어린이 지도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었다.

또한 오영석이 늦잠을 잔다는 것이었고 저녁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침 늦게 일어나 보면 학교 갈 시간은 지나갔고 갈 곳은 없고 동네 오락실을 기웃거리다가 거기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불량배들과 어울리다가 같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반복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영석의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는 학교생활에 적응시키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학교생활도 정상적으로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교사가 도시락을 2개 준비하거나 아동들이 돌아가면서 자발적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하며 또 점심시간에는 라면을 끊여주거나 빵을 사다 주거나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한 것은 오영석이 자존심이 들어 안 먹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으나 처음에는 잘 안 먹으려고 하는 것을 잘 설득을 시켰더니 그 다음 부터는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아침 9시가 되어도 학교에 안 오는 것은 늦잠을 자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자는 것을 깨워서 데려오기도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는 사제 간의 정이 붙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 대화도 의도적으로 하고 특별 학습지도를 하였다. 대개 문제아들의 공통점은 학습에 흥미를 잃거나 학교생활에 취미를 잃어 지낸다.

이 아동도 마찬가지로 성적이 부진하고 5학년이지만 아직 구구단도 전부 못 외우고 간단한 계산도 못하고 한글도 겨우 띄엄띄엄 읽을 정도였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도록 공부시간 및 방과 후에 특별 관심을 기울여 지도를 하였다.

오영석을 정상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하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도록 하는 일이 목표였다.

학교 공부시간에는 일부러 영배가 마다 처음에 교과서의 글을 읽도록 시켰다. 띄엄띄엄 읽어 가는 소리에 같은 반 어린이들이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그것도 5학년씩이나 된 녀석이 정말 한심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였다.

일부 아이들은 왜 오영석만 시키느냐고 불평을 하였지만 진의를 설명 듣고는 잘 이해를 하여 불평이 없었다.

조그만 칭찬할 만한 일이라도 발견되면 칭찬을 하여 주었다.

그러니까 홍길동 선생과 거리감이 없고 자연히 친밀감이 형성 되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같이 한다든가 계절에 맞는 옷을 사다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홍길동 선생과 친밀감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듯싶었다.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학교에 나오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었고 혹시 안 나오는 날이 있으면 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 앞섰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수업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복도에서 아동들이 떠들며 복잡하면서 경찰이 갑자기 교실로 들어와서 현행범으로 오영석을 잡으러 왔다고 한다.

오영석이라는 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겨우 경찰에게 이야기를 잘해서 '지금 수업중이니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내가 교무실로 데려 갈 테니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붙잡아 갈 수 있느냐?'고 사정을 해서 여러 아이들 앞에서 수갑을 차는 장면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담임선생님이 책임지고 교무실로 수업이 끝난 후 데려가기로 하였다.

남은 시간 수업을 하는 등 마는 등 정신이 없었다.

며칠 전에 출장을 갔는데 그날 아이들 말에 의하면 2교시가 끝나자 내가 없는 것을 알고 불량 청소년이 찾아와서 오영석을 데려갔다고 한다.

그날 기어코 불량 중 고등학생들과 어울려 동네 집 가운데 빈집만을 골라 오영석은 망을 보고 다른 불량 학생들은 열쇠로 빈집만을 열고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쳤다고 한다.

파출소에 요 며칠 사이에 동네에서 집의 물건을 자주 도난 당 한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잠복근무 중 몇 명의 학생이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여서 그 가운데 잡힌 불량 학생들에 의해 알아본 결과 공범으로 오영석을 붙잡으러 왔다고 한다.

교무실에 수업이 끝난 후 가보니 교무실에 다른 4학년 어린이가 포승줄에 묶여 앉아 있었다.

이들 두 명은 현행범이 되기 때문에 직접 데리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정말 여태까지 오영석 어린이에게 정성을 기울인 결과에 대한 보답인가?

정말 눈앞이 캄캄하였다.

경찰 아저씨 이야기로는 이 어린이는 아마 소년원에 갈 것 같다고 하면서 같이 훔친 불량 중 고등학생들은 지금 소년원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경찰 아저씨에게 요즘 맘을 잡고 열심히 공부도 하려고 좋은 착한 학생이 되려고 한다. 면서 책임지고 지도하겠다고 사정도 해 보았지만 이 학생은 현행범으로 붙잡아 가야 된다고 하면서 안 된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에 어린이의 아버님한테 연락이 늦게 닿아서 자초지종을 얘기 했다.

전화를 처음 할 때는 홍길동 선생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왜 경찰이 데리고 가도록 가만히 있었느냐 것 같았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노력하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 면목이 없다고 하시면서 한숨을 쉬셨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고 정말 난감 하였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닌가 하는 좌절감도 맛보았다.

후에 아버지의 다짐을 받고 오영석은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그렇지만 이번은 충격이 커서 자신이 흔들렸다.

모든 게 다 싫었다.

너무 괴로워서 퇴직할 결심도 해 보았다.

교사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자격지심도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오영석을 다루어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러나 포기 할 수는 없었다.

학교 신우 회 활동도 매우 활발하였다.

70여명의 선생님 가운데 40여 분이 매주 정기적으로 금요일 오후 4시가 되면 한 교실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각자 갖고 온 문제를 갖고 기도를 하였다.

담임 맡고 있는 아이들이 하도 속을 썩 혀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신앙적으로 열심이고 불이 붙었다.

적지 않는 수였다.

어느 목사님이 문제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 는 말이 생각났다.

신우 회 모임에 선생님들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내가 맡고 있는 학급에만 지독한 문제아가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학급 6학년에는 여자 어린이가 여자 중학생과 그룹을 지어 남의 물건을 훔쳐 속을 썩는 선생님도 계셨다.

정말 좋은 모임이었다.

세상 적으로 볼 때는 권력도 없고 힘도 없는 선생님들 오로지 제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모여 나라와 가정과 학생들이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모임 무엇이 그들에 마음에 다른 생각이 있을까? 왜 요즘은 당국에서 타종교와 차별이라 학교 교실에서 성경말씀도 학생들에게 들려주지 못하게 한다.

하루 속히 학교에서 마음 놓고 학생들에게 성경말씀도 들려줄 수 있는 때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오영석을 괴롭히는 악한 영들과 싸우자.

이기자.

한편 오기도 들기도 하였다..

최선을 다해보자.

하나님은 선한 자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 라는 확신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오영석이 며칠 후 경찰서에 붙잡혀 간 다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현행범이지만 부모한테 인계를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풀려나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전보다 더 관심을 갖고 생활을 지도하였다. 5학년이지만 구구단도 모르고 한글도 띄엄띄엄 읽는다.

일부러 국어 시간이 되면 읽기를 시키었다. 어떻게 하든지 공부에 관심을 갖도록 위해서였다.

방과 후 학교수업이 끝나면 다른 불량학생들과 어울릴 염려가 있어 늦게까지 데리고 학습지도를 하고 토요일 날은 당시는 토요일이 토요 휴업일이 아니어서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늦게까지 데리고 있다든가 점심을 사 먹이고 가끔 계절에 맞는 옷도 사 입히고 아무튼 관심을 기울여 지도하였다.

학교에 결석을 하는 일이 없이 학교를 잘 다니었다.

반 어린이 아이들 한데도 특히 관심을 갖고 잘 놀아주도록 부탁하였다.

학교를 정상적으로 잘 다니었다.

여름방학이 가까웠다.

아버지도 걱정이 되는지 이번 여름방학에 전남 영광에 외할머니가 계시는데 그곳에서 지내도록 하겠다고 한다.

40일간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 아버님이 고향 할머니 댁에서 재배한 꿀이라면서 병에 든 꿀 2병을 갖고 교무실로 와서 하나는 교감선생님 하나는 본인에게 주시면서 그동안 우리 영석이를 위해 고생 많았다고 고맙다고 한다.

홍길동 선생도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면서도 극구 사양을 하였지만 할 수 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그 후 6학년에서도 잘 학교를 잘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아는 얼마든지 관심을 갖고 지도하면 해결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둘째 교통사고

당시 데리고 있는 어린이들이 3,4학년 복식학급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어린이가 와서 교문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급히 뛰어 나가보니 평소에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한 어린이가 교문 앞에서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 살겠다고 소리치며 우는 것이었다.

또 다른 어린아이는 군인 트럭 차바퀴에 깔려 인사불성 이었다.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차바퀴에 깔린 아동을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였다.

살 만큼 살았으니 저를 데려가 주시고 이 어린이를 살려 주세요 그때 기적은 일어났다.

마침 탱크 사격장으로 가는 탱크를 호위하던 헌병 차에 인계를 하고 전곡 읍 까지 가서 진찰을 한 결과 한 어린이는 여기서 치료를 받아도 되는데 의식을 잃은 아이는 의정부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한명은 전곡읍에 남아서 치료를 받는데 그 어린이의 엄마가 같이 병원에서 일주일간 같이 지내는데 어느 날은 다친 어린이의 다친 부위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데 의사한테 말을 하였더니 담당 의사가 말하기를 원래 상처부위 다친 데가 나려면 생살이 날려고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 어린이의 엄마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친 넓적다리를 풀어 달라고 하여 보았더니 그 부위가 살이 썩어 의사는 급히 서둘러 서울의 모 대학 병원으로 후송을 하여 거기서 치료를 하는데 마취도 안하고 뼈 주위의 그 썩은 살을 전부 긁어냈다고 한다.

한 달이면 족히 충분히 치료될 것을 6개월이나 걸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교통사고 나면 큰 병원으로 옮겨야겠다는 당시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그 후에 2명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학교에 나왔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본인이 잘못도 있지만 학교나 버스 운전기사의 안전의식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당시 학교 교실에는 컴퓨터가 286컴퓨터가 몇 대 있는데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서로 빨리 가서 컴퓨터를 차지하려고 급한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좌우를 살펴보지도 않고 반대편에서 오는 군인차량을 보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

또 당시 버스의 문이 앞문 밖에 없어 앞에서 내리자 뒤로 가는데 상대편에서 차량이 오는 것을 못 보았고 또한 기사도 상대편차가 오면 버스기사도 아이들을 차가 지나간 다음 하차를 해야 하는 것인데 위험하다는 인식을 못하고 아동들을 내리게 한 결과로 교통사고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홍길동 선생은 아동의 담임교사로서 책임감도 느끼었다.

학교생활이 끝나면 서울에 있는 병문안을 하고 이런 생활을 하니 교원 생활가운데 가장 괴롭고 힘든 때였다.

그러나 한편 부족한 신앙생활도 이것을 계기로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을 더 보고 기도를 더하게 되었다.

셋째 오십견 질병 치료

어느 날 출근하는 아침 살고 있는 집근처에 철봉이 있어 매일 아침마다 철봉 운동을 하고 갔다.

어느 날 출근길에 역시 철봉 운동을 하는데 어깨가 아파서 고통을 느꼈는데 조금후 아픈 괴로움은 사라졌다.

3년후 철봉 운동을 출근하는데 어깨가 아파서 참을 수가 없어 퇴근 후 동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한방병원에 갔으나 효과가 없어서 치료를 잘한다는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몇 번 치료를 받았으나 진전이 없어서 어느 날 대학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

너무나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게 많은 노인들이 뼈 관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몇 백 명은 되고도 남직한 수가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역시 대학병원에서 치료가 별 효과가 없었다.

의료기 판매를 하는 곳에서 부항기와 쑥 침 자료를 구입하여 집에서 치료를 하였다.

그러든 어느 날 부황을 붙이고 고단하여 잠이 들어 버렸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부황을 붙인 자리가 너무 오래 붙여서 피가 날 정도로 되어 있었다.

약국에서 붕대와 약을 사서 치료를 하였다.

학교에 출근하여 근무하는 동안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가까운 교회에 가서 기도하며 보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책을 들고 교회로 갔다.

계속해서 새벽에 순복음 노원교회에 가서 말씀을 읽고 기도를 3개월 정도 어느 날 새벽에 나을 것 같은 확신이 들면서 오십 견이 나았다.

 

작성자 순복음노원교회 집사 홍석동 전화번호 010 2225 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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