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선포된 하나님 말씀의 가치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의 말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불링거가 쓴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에서 나와 있습니다(1562년). 그는 설교보다 예전(禮典)을 중시했던 중세교회에 맞서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설교를 강조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바른 성경해석, 바른 선포가 있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사상입니다. 그런데 요즘 설교를 인문학 강의나 지루한 훈계 정도로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심이 일어나고 회개가 일어납니다. 용기를 얻고 비전을 받게 됩니다. 설교자들에게도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되도록 기도와 묵상, 바른 해석과 적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그래픽=이영은 기자
가정예배365
[1월 16일] 종의 자리로 돌아가라 찬송 :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257장(통 18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창세기 16장 1∼16절 말씀 : 나이가 많이 든 아브람에게 출산하지 못한 아내 사래가 있었습니다. 자손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래는 자신의 방법대로 해석하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왜 하나님께 한 번 더 묻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계신 분이라고 믿으면서도 내 생각대로 먼저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설마 하나님의 방법이 내 생각과 계획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자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선택으로 받아들인 첩 하갈은 사래의 큰 근심거리가 됩니다. 종 하갈이 사래를 멸시합니다. 또한 이에 모욕감을 느낀 사래는 남편 아브람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사래는 하갈이 도망칠 정도로 학대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택한 아브람과 사래의 삶에 행복보다는 어두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 너머에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릅니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결국 주인으로부터 학대를 받아 도망간 하갈을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하갈은 배은망덕하게 자기가 임신했다고 여주인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에게 아무런 책망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민족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이스마엘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내가 들었다’라고 하십니다. 이에 하갈은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헤로이’라고 부릅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기도를, 아픔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의 그 상처를, 아픔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9절) 우리에겐 해야 할 결단이 있습니다. 정말 죽어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그것 때문에 도망쳤는데, 다시 돌아가라니요. 거기다가 복종하라니요. 이 명령은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처음 만나 던진 질문의 대답입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8절) 다시 말해 ‘네가 누구냐?’라는 존재의 질문입니다. 주인의 아이를 가졌다고 주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갈은 사래의 몸종입니다. 사래의 위치를 욕심내는 존재가 아니라 사래의 말 한 마디에 살고 죽는 종이라는 사실, 그 자리를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돈 좀 벌었다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내가 누군지 잊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주신 물질과 힘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쁘신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 종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내 생각과 내 주장 너머에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지키시는 분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방일섭 목사(서울 두모갓교회)
오늘의 QT
2017년
1월 17일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시 6:10) “All my enemies will be ashamed and dismayed; they will turn back in sudden disgrace.” (Psalms 6:10) 어제 2∼3절에서 시인이 겪는 고통을 나타내던 말이 오늘 10절에선 그를 괴롭히던 원수들에게 적용됐습니다. 시련 속에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몸서리치던 바로 그 사람은 기를 펴고 힘을 얻었습니다. 억울하게 괴롭히던 자들은 시인이 그들에게 당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물러가리로다’란 말은 4절에서 하나님께 제발 도와주십사 간청할 때 쓰인 바로 그 용어입니다. 기도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되돌아오는 순간, 모든 것이 사필규정으로 됐습니다. 신앙인을 괴롭히며 비정상적으로 형통하던 사람들은 패배자가 됐습니다. 그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은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 인생에 이렇게 통쾌한 역전극을 불러옵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우리가 와 있는 곳 모든 종교마다 예배가 있습니다. 기독교도 예배합니다. 기독교회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배의 방향을 본다면 뚜렷합니다. 모든 종교의 예배는 주로 상행선입니다. 하늘을 향해, 신을 향해 무언가 열심히 올려 드립니다. 교회의 예배는 일차적으로 하행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래로 내려 보내 주십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기 이전에 받는 것입니다. 받은 것 없이 드릴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쌍방향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시내산 체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자기 백성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산 전체가 불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폭풍이 불어오고 번개가 번쩍거립니다. 산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하고 나팔 소리로 진동했습니다. 그리고는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에 배경으로 등장하십니다. 모습은 볼 수 없고 소리만 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 장면, 그 소리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본 민족이야. 우리 같은 민족 있으면 나와 봐” 하며 자부심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그렇게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의 예배는 하늘의 예루살렘 체험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다른 산을 말합니다. 시온산입니다. 예루살렘의 한 언덕이 시온산인데 그곳에 성전이 세워지면서 시내산을 대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광야의 시내산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시온산 성전이야말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보좌를 펼치신 곳입니다. 본문에서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히 12:22)’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너희’는 유대인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그곳에 천만의 천사가 있습니다. 그곳에 삼위 하나님이 계시고, 의인들이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신약교회가 예배하면서 이르는 곳은 지상의 어떤 산이 아니라 하늘의 도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교회가 예배하면서 누리는 영광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예배 자리가 어떤 곳입니까. 예배는 건물의 크기와 화려함이 문제가 아닙니다. 회중의 정성과 열심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이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나 우리의 노력으로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복을 누립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습니다. 우리 예배는 삼위 하나님을 받아 그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복된 예배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평생 예배하는 자리에 있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들입니다. 안재경 목사<남양주 온생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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