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마라나타 예수님의 재림은 십자가의 구속만큼이나 기독교의 중요한 신앙입니다. 과거의 십자가는 무한한 은혜로 여기고 생각만으로도 뭉클하면서 미래의 재림에 대해 불안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오신다면’이란 질문에 난색을 표하며 오늘 오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왜 그러십니까’라고 물으면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준비를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겠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준비를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행을 잘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행을 믿는 율법적 신앙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십자가 복음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 역시 은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대와 감격의 대상입니다. 우리 모두의 입에 ‘마라나타’가 기쁨으로 고백되기를 원합니다. <강신욱 남서울평촌교회 목사> 그래픽=이영은 기자
가정예배365
[9월 27일] 사도 바울의 위대한 간증 찬송 : ‘예수 따라가며’ 449장 (통 37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빌립보서 3장 12∼16 말씀 : 사도 바울은 앞서 율법주의자에 대한 경고(빌 3:1∼11)를 했고, 반도덕주의자에 대한 경고(빌 3:17∼21)를 하기 전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대한 간증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이 세운 목적을 바꿔버렸다고 간증합니다(12). 사도 바울의 본래 목표는 예수 당시의 유명한 역사가요 철학자인 필로와 같은 인물이 돼 출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기도하는 시간, 수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침내 그는 온전히 예수의 포로가 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 15) 그러므로 내가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예수를 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목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삶의 목적이 그리스도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 즉 이방인의 사도로서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둘째, 자신의 신앙이 미완성이라고 간증합니다(13∼14). 여기서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은 충분히 성숙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이루었다’함은 성숙한 제자, 순교까지도 할 수 있는 성도가 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 아직 순교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만한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진실하고 솔직한 고백입니까. 그래서 두 가지 비결을 바울은 말합니다. 먼저 뒤의 것은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하던 못된 것, 취미, 그릇된 습관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려야 합니다. 끊어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어 바울은 푯대를 향해 쫓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푯대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시는 부름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푯대는 천국에 있습니다. 푯대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입니다. 성도의 상은 영생이며, 선한 싸움을 싸운 자에게 주는 면류관입니다(딤후 4:8).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칭찬이나 비판 같은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아야 합니다. 푯대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만 보고 달려가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위대한 바울도 한때는 예수를 믿는 사람, 유대인, 그리고 심지어 주님의 일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바울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만 바라보고 달려갔습니다. 끝으로 16절에서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어디까지 달려왔는지 다시 뒤돌아보지 말고, 궤도 수정을 하지 말고 그대로 앞으로 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귀한 명령이요 또 신앙의 간증입니다. 그의 간증이 저와 여러분의 간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사도 바울과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박재호 목사(대구 노변제일교회)
오늘의 QT
2016년
9월 27일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Is not the whole land before you? Let’s part company. If you go to the left, I’ll go to the right; if you go to the right, I’ll go to the left.” (Genesis 13:9)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광고를 기억하십니까. 한 번의 선택이 우리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으니 후회하지 않을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입니다. 어떤 농사를 지을지 선택할 때는 수입을 고려해야 하고, 대통령을 선택할 때는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와 역사의식, 미래에 대한 비전, 리더십을 봐야겠지요. 크리스천들은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기뻐하시며 축복하시지만 롯처럼 세속적 판단과 자기 욕심을 따라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은 심판하시니 신중히 선택해야 합니다. <김수영 거제다대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박상영 펜싱 선수는 지난 8월 열린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점수 하나 차이에 지는 상황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올림픽 대비 훈련 전부터 두 달 간 매일 전국 사찰을 돌며 기도를 올렸다 합니다. 그때마다 ‘펜싱 선수 박상영 리우올림픽 파이팅’이라는 기도 내용을 기왓장에 적어 올렸습니다. 그녀는 시합이 있던 8월 9일에는 경남 진주 인근 사찰에서 기도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불교인들이 사찰의 기왓장을 구입하면서 기도할 것입니다. 특히 진주 인근의 사찰은 영험한 사찰로 소문이 나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는 불자(佛子)들로 붐빌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교도 북을 치며 통성기도하면서 기복을 강조하는 사찰이 부흥합니다. 로또 1등 당첨이 나온 복권판매소에 사람들이 줄을 서듯 기도응답이 이뤄진 사찰들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고려와 조선시대부터 한국인들에게 자연스러웠습니다. 자신의 원함을 신에게 정성스럽게 간구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생각이 무속과 불교, 기독교 등 한국 종교 전반에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의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므로 중언부언할(babbling)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중언부언합니다. 자극적으로 기도해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내 응답을 받겠다고 여깁니다. 참된 신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원함을 부인하는 것은 강력하게 날아가는 로켓의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 힘듭니다. 기도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나라와 지역 문화, 정서를 성경으로 극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이들은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고 큰 소리고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왕상 18:28). 마치 무당들의 굿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에게 침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회를 열지만,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기도라는 명목으로 사람의 욕심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함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하는 것이 기도임을 알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상고해야 합니다. 자신의 열심으로 기도응답을 받으려고 하기에 앞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미 주시고자 한 약속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하나님이 정말 주시고자 하는 선물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정요석 목사 (서울 세움교회) ◇약력=△합동신학대학원대(조직신학 박사) △대신총회신학교 교수 △'소요리문답, 삶을 읽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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