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하나님 앞에 겸손한 지도자 오스 기니스의 ‘소명’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합스부르크 가의 황제들은 죽은 후 비엔나 카푸친 수도원의 지하 납골소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란츠 요셉 황제가 죽었을 때 거대한 장례행렬이 굳게 닫힌 수도원의 정문에 도착했고 의전관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때 문 너머에서 수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분은 누구요?”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의 왕 프란츠 요셉이오”라고 의전관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오. 당신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말해 보시오.”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 보헤미아,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달마시아의 왕이며, 트란실바니아의 대공작이자, 모라비아의 후작이며 스티리아와 코린티아의 공작인 프란츠 요셉이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아직 모르겠소.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라는 서늘한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때서야 의전관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비를 겸손히 구하는 불쌍한 죄인 프란츠 요셉입니다.” “그대는 이제 들어오시오”라고 수도원장이 말했고 대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경과 링컨 대통령이 1861년 취임식에서 사용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함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에게도 동일한 도전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글=최효석 무지개언약교회 목사, 삽화=이영은 기자>
가정예배365
[1월 22일] 나를 웃게 하신 하나님 찬송 :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182장(통 1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21장 1∼7절 말씀 : 드디어 사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들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나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사라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사사기 6∼7장에 보면 기드온의 300 용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연합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이때 적의 수는 메뚜기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는 해변의 모래와 같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 수는 3만2000명. 그때 하나님은 2만2000명을 돌려보내고, 또 다시 물 먹는 모습을 통해 300명만 남기십니다. 300명 가지고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것을 내려놓는 시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붙들 수밖에 없는 순간, 이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포기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셔서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는 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4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킵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만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서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핑계거리를 만들어 지키지 못하는 이유만 대지 말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 이제 사라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나의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나 하나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기쁨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기쁨이 됩니다. 나로 인해 주변이 행복합니다. 얼마나 기쁠까요. 말씀을 읽는 우리도 기쁩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라고 외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도 웃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만 향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복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천국 백성의 기쁨을 소유하며 나의 기쁨을 통해 나의 주변이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작지만 하나하나 순종하면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주기도문 방일섭 목사(서울 두모갓교회)
오늘의 QT
2017년
1월 21일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시 7:14) “He who is pregnant with evil and conceives trouble gives birth to disillusionment.”(Psalms 7:14)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라고 하셨습니다. 악인들은 ‘회개하라’는 말씀을 거절하며 진노의 잔을 채우곤 합니다(롬 2:5).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 징벌을 준비하셨습니다. 마치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장대를 만들었다가 자신이 매달리는 신세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악하게 계획한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포악하게 행하는 바로 그것이 자기 머리에 떨어집니다. 악인의 자멸, 악의 부메랑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보응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 받으십니다. <정현진 서울 수도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사랑 없는 거리에서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선생이신 갈릴리 예수의 삶을 닮아가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 독일에서 공부를 다 마칠 즈음 예수의 저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현지 사회복지기관인 ‘하이델베르크 디아코니아센터’를 통해 귀국 전까지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을 방문해 청소도 해드리고 말동무도 돼 드렸습니다. 어떤 할머니 집은 매우 큰 저택이었는가 하면 또 다른 할머니의 거처는 아주 열악했습니다. 어느 날 디아코니아 담당자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대인기피증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끊고 장기간 외출을 거부하신 한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에만 계신 외로운 할머니에게 말동무가 돼 드리기로 했지만 대화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할머니를 뒤로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우울했습니다. 독일의 사회복지를 생각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독일 디아코니아의 대부’ 요한 하인리히 비헤른(1808∼1881)입니다. 신학생 시절 그는 ‘신앙은 삶으로 드러나야 하며 고난을 경험하는 이웃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비헤른은 베를린에서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섬김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그 소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겠습니다.’ 1951년 여름 비헤른의 고향이자 디아코니아 운동의 시발지인 함부르크 라우에하우스를 방문한 독일 대통령 테오도어 호이스는 비헤른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비헤른은 위대한 신학자가 되기 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신학자보다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재촉했기 때문이지요.” 역설적으로 비헤른은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 위대한 방식으로 독일 개신교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수고가 생명의 길임을 알지만 우리 몸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스스로를 ‘섬기는 자’(디아코노스)라 칭하셨고, 그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섬기는 자’가 되라고 권고하십니다. 섬김은 우리가 갖춰야 할 여러 덕목 중 하나가 아닙니다. 섬김은 신앙의 본질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제자, 사랑의 선수가 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무죄일 지라도,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유죄입니다. “섬김이 아닌 그 모든 것은 도적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 외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의 천재인 비헤른은 ‘사랑은 신앙 그 자체’라는 마음 하나로 이웃과 사회 현장에 파고들었습니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찬송가 301장 가사 중) 비헤른이 형제의 발을 닦아준 삶과 신앙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섬김은 나의 구원이요, 사랑은 세상의 희망’이라는 마음으로 이웃의 발을 씻어주면서, 그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전철 목사(한신대 신학과 교수)
  • Refo500 종교개혁 500주년
  • 한국의 생명교회
  • 박종순목사의 신앙상담

  • 이슈체크
  • 소울터치
  • 내 신앙의 나침반
  • 싱포유
  • 시사소설
  • 신천지 실체를 파헤치다
  • 교회누나 이야기
  • 스타인헤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