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4개의 톱니바퀴 전통적인 교회는 세대교체의 부담이 큽니다. 세대교체가 잘 되지 않으면 영적 침체의 늪에 빠져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4개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입니다. 4개의 톱니바퀴는 첫째 원로목사(은퇴목사), 둘째 당회, 셋째 담임목사, 넷째 부교역자입니다. 아무리 힘든 교회도 이 4가지가 맞으면 살아납니다. 아무리 좋았던 교회도 이 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주저앉습니다. 역동성을 회복하기 힘들어보이는 전통적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4개 톱니바퀴가 잘 맞아 활성화됐습니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첫 당회를 마치고 원로목사님에게 보고하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목사님이 당회장이니 내게 보고하지 마십시오. 당회 결정대로 추진하세요.” ‘잘되는’ 교회는 당회가 담임목사를 밀어주는 교회입니다. 담임목사가 뛰어나지 않아도 기본기가 있다면 당회, 부교역자와의 팀워크를 통해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대교체를 앞둔 교회들마다 4개의 축이 잘 맞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교회도 살아나게 돼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교회도 4가지가 맞으면 비상합니다. 이 4개의 톱니바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협력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박성규 부산 부전교회 목사>, 삽화=이영은 기자
가정예배365
[12월 6일] 심판하시는 메시야를 만납니다 찬송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455장 (통 50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이사야 33장 13∼16절 말씀 : 본문은 심판도 하시고 보호도 하시는 하나님을 전해줍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아지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신과 멀리 있는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때의 하나님은 불에 비유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이때의 하나님은 견고한 바위에 비유됩니다. 이사야 당시 앗시리아는 거대한 강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변 나라들을 점령하고 무자비하게 약탈했습니다. 때가 됐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상대하셨습니다(10∼12절). 그들에게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앗시리아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행한 모든 정복행위는 바람에 부는 겨와 같이 사라질 것이며 불이 붙어 순식간에 없어지는 지푸라기 같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11절에는 호흡과 불이 동격을 이룹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이 화마가 되어 모든 것을 태우듯이 앗시리아의 정복야욕은 결국 그들 자신을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사 7:15, 37:15). 권능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3∼14절). 멀리 있는 자는 앗시리아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불에 삼켜지듯 소멸됩니다. 가까이 있는 자는 유다 백성 중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시온에 살면서도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심판에 초조하고 두려워 떨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시리아뿐 아니라 그들과 덩달아 춤췄던 뭇 민족과 나라들도 함께 심판하십니다. 그들을 불에 탄 석회 같게, 잘라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게 하십니다(12절). 사람들 중에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악한 세력과 손을 잡는 이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오르고 나서도 그 위치를 지키려고 그들과 상부상조하며 지냅니다. 이런 이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실 때 의인들은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높은 곳에 머물 것입니다(14∼16절).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하게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생활태도를 가리킵니다. 심판의 주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십니까. 안전한 곳에 살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국적이나 혈통이나 사는 지역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사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손에는 손바닥과 손등이 있듯이 하나님은 심판의 주이신 동시에 사랑의 주입니다. 칼뱅은 세상에서 가장 큰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랑의 주라고만 하면서 심판의 주가 아니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판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갑니다. 기도 : 하나님,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모습을 유지하게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현진 목사(서울 수도교회)
오늘의 QT
2016년
12월 6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요 8:2) “At dawn he appeared again in the temple courts, where all the people gathered around him, and he sat down to teach them.”(John 8:2) 종교지도자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성전을 찾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아침부터 성전을 찾아 주님은 말씀을 전하시고 백성들은 듣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고도 귀한 모습입니다. 여인을 잡아끌고 성전으로 들이닥쳤으니 성전 안에서는 당연히 소란이 일었겠지요. 여인을 끌고 온 이들은 바로 그 순간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을까요. 자신들로 인해 주님의 말씀이 중단됐다는 것을, 모든 것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엄청난 잘못을 하면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전에서는 말씀이 중단되면 안 됩니다. <한희철 부천 성지감리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이 16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시대 유대나라는 그들의 역사 속에서 가장 참혹한 고난이 존재하던 때였습니다. 전쟁비용을 메꾸기 위한 로마의 징세권 정책에 유대인들은 속수무책 경제침탈을 당합니다. 인구 수대로 세금을 거두려는 삭개오는 동네 주민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삭개오는 죄가 없습니다. ‘내가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라고 자신감과 의로움을 드러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매일 생겨나고 희망을 위한 조건은 하나도 없는 암흑시대에 그들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제자들 앞에 계십니다. 당시 제자들은 메시야관에 대한 5가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째, 메시야를 통한 먹는 문제 해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선포하실 때 1만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의 배고픈 절박한 문제를 오병이어로 해결하고 식량이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메시야를 통한 경제문제 해결을 확신합니다. 둘째, 배부르게 먹어도 찾아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질병의 고난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역 중 두 번째로 많은 것이 질병치유 사역입니다.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해결됐습니다. 메시야를 통한 건강회복의 완전한 해결을 믿게 됐습니다. 셋째, 건강하고 잘 먹어도 당하는 것이 천재지변입니다. 지진과 토네이도 등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무력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를 덮친 천재지변의 광풍 앞에서 예수님은 ‘잠잠하라’는 명령 한마디로 순종케 하셨습니다. 넷째, 민족의 공통 소원인 로마로부터의 주권회복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남북통일보다 훨씬 강한 열망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관은 예수님이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실 때 모든 시민들과 제자들의 희망은 하늘을 찌를 만큼 충만합니다. 다섯째, 인간은 모든 것을 소유해도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심으로 제자들은 죽음의 문제에서도 희망을 갖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고난인 죽음의 문제도 제자들 보는 앞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희망조건을 완벽히 해결하신 예수님은 그러나 제자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가셨습니다. 식민지 해방은 고사하고 빌라도 군대에게 처참하게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할 때 예수님의 모든 설교를 종말론적 교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영생을 누리는 데 초점을 맞추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그것입니다. 다른 것에 목적을 두면 부작용만 일으키게 되고 결국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게 됩니다. 이처럼 영생의 축복을 받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세상을 구원하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미련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영적으로 지혜로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구원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필재 목사 (갈보리교회 공로) 약력=△서울장신대학교 △미국 예일대학원 기독교윤리학 수학 △전 미국 국제선교교회 담임 △전 학교법인 피어선기념학원(평택대) 이사장 △평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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