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당신은 승자입니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J 하비스는 승자와 패자의 차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먼저 승자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패자는 ‘너 때문이야’라고 말합니다. 또 승자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지만 패자는 이를 적당히 합니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지만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못 숙입니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일어나 뒤를 봅니다. 승자는 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합니다. 승자는 과정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패자는 결과에만 매달려 삽니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패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립니다. 승자는 바람을 돛을 위한 에너지로 삼고 패자는 바람을 만나면 돛을 내립니다. 승자는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말을 즐겨하고 패자는 ‘해봐야 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승자는 순위나 포상과는 관계없이 열심히 달리지만 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포상만을 생각합니다. 승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을 보면 존경심을 갖고 그로부터 배울 점을 찾지만 패자는 질투심을 갖고 그의 갑옷에 구멍 난 곳이 없는지 찾아봅니다. 승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있으나 패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 즉시 지배자가 되려고 합니다. 당신은 승자입니까 아니면 패자입니까. <고경환 순복음원당교회 목사>
가정예배365
[7월 27일] 연기처럼 사라질 우상 찬송 :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492장(통 54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호세아 13장 1∼3절 말씀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광야 생활에서 겪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광야 시절에는 그야말로 생존이 문제였습니다. 매일같이 기적의 40년을 살았으니까요. 가나안에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가나안의 모든 생활은 우상이 지배했습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셔서 영향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에브라임(이스라엘)이 말하면 주변이 떨 만큼 강성하게 됐습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1) 그렇다면 에브라임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축복을 받아 부강해지니 엉뚱하게도 자신의 공로로 잘 되었다고 착각하고는 믿음보다는 현실 감각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고립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교류와 소통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우상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순은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거기에 입까지 맞춥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우상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우상숭배를 제외한 다른 종류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는 유일하신 절대 신성을 모독하는 죄이고, 온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거부하는 죄입니다. 이런 심각한 우상숭배의 근본 원인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롬 1:19),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종교성은 남았지만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려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끝은 결국 멸망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이스라엘의 결말을 본문은 4가지 비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니라.”(3) 우상숭배로 번영한 삶의 허무함을 구름 이슬 쭉정이 연기로 보여줍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신속히 사라지는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니 여로보암 2세 때의 번영과 영광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물거품 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홀연히 사라질 물질의 연기, 권세의 구름, 음란의 쭉정이, 명예의 이슬들을 쫓고 있습니다. 열흘도 못 가서 시들어질 꽃을 영원한 것으로 알고 쫓아갑니다. 혹 현재 우리 가정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에게 확고하고 영원한 위안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기도 : 사랑의 주님,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 같은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토록 그 믿음을 변치 않고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임우성 목사(압구정예수교회)
오늘의 QT
2016년
7월 27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행 4:11) “He is the stone you builders rejected, which has become the capstone.”(Acts 4:11) ‘버린 돌’은 시편 118편에서 다윗이 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상을 엎으시고는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시며 성전을 깨끗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에서도 ‘버린 바 되었으나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이름 뜻이 ‘바위(돌)’인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됩니까. 어떻게 살아있는 돌이 됩니까. 바로 주님이 우리의 건축자가 되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김한호 춘천동부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범죄한 아담과 하와, 하나님의 개입 어느 식당에 걸려진 액자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내 탓입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글귀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 대신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범죄한 이후 아담과 하와는 ‘내 탓이요’가 아닌 ‘네 탓이다’라고 항변합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 현장인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의 모습과 더불어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인류에게 주신 복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아담의 모습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은 범죄하기 전이나 후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전혀 다른 음성으로 들립니다. 범죄하기 전 하나님의 음성은 아담에게 친근했지만 범죄한 후 아담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숨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불순종하기 전 아담은 벗었지만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벗은 것을 알렸으며 먹지 말라 한 열매를 먹었느냐”고 되묻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이 바로 아담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한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책임 전가하며 합리화시키는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 원인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여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사랑하는 아내가 증오의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둘째, 하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하와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와 역시 아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립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똑같은 모습, 즉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치유책은 전혀 없습니다. 핑계하며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책임 전가가 계속 진행됩니다.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인간을 위한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뱀을 저주하십니다. 여자의 후손과 원수 되게 하시고 결국 영원한 파멸에 처해지고 맙니다.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평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십자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사망 가운데 멸망 받을 아담과 하와 그리고 모든 인생에게 복음이 됩니다. 진정한 복음은 ‘내 탓입니다. 당신 덕분입니다’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는 분쟁과 다툼과 싸움을 종식시키는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복음의 능력으로 매 순간 매일의 삶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현상도 목사 (영암시종교회) ◇약력=△1957년 전남 광주 출생 △총신대신대원 졸업 △현 국제기아대책기구 전남중부지역이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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